회화적 내용은 어떻게 의미를 갖는가

회화는 재현적이다. 어떤 대상을 묘사한다. 그러나 실재 대상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상인 것은 아니다. 회화 자체는 대상의 대리물이지만, 우리는 회화를 보면서 실재 대상을 보는 듯이 본다. 회화는 실재 대상을 닮았다. 실재 대상과 회회가 닮음의 관계라면 한낱 종이 위에 선과 색으로 그려진 자국에 불과한 그림을 보고 우리는 어떻게 대상을 재현했다고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내용까지 갖는다고 알 수 있는가?

그림은 주제와 닮음으로서 재현한다는 것이 전통적으로 오래되고 직관적인 해법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그림과 주제는 서로 닮았으나 그림이 주제를 재현한다고 해도 주제는 그림을 재현하지 않는다. 필요충분적이지 않다. 대상과 회화는 일정 부분 주관적인 면을 지니고 있고 필연적이기보다 그림과 주제에 대한 시각적 <경험>의 원리로 설명한다. 그렇게 주관적인 <경험>을 도입하면 주제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과 그림이 주제를 그리는 것이 어느 정도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가 된다. 객관적으로 완전 똑같지 않더라도 재현 관계에 대해서 논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그리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림이 그리는 주제는 현상적 속성과 감각적 속성을 갖는다. 직사각형을 그린 그림에서 선분이 네개이고 검은색 선으로 구성된 표면이 현상된다. 이는 현상적으로 시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속성이다. 이는 객관적 닮음보다 주관적 경험을 뜻한다. 예컨데 직사각형 그림이 스위스 치즈의 형태와 동일하다고 해서 반드시 스위스 치즈를 묘사한 것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가죽 지갑을 묘사한 것으로 경험될 수도 있고 담배 패키지를 묘사한 것으로 경험될 수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현상적 속성이 감각적 속성과 닮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닮음이라는 것은 형태적 동연성인데, 직사각형을 감각한 여러 다른 경험처럼, 그것은 해석적으로 이해한 결과이지, 순수한 닮음 그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석을 걸쳐서 가능하다면, 닮음 이론은 그림에 의하면 현상적 속성과 감각적 속성 두가지의 간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상적 속성과 감각적 속성은 엄연한 회화 경험의 두 국면으로서 서로 종합되어야 한다. 모순적인 부분이 하나의 전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그림은 현상적이기도 하고 감각적이기도 함은 여전히 참으로 보인다. 그려낸 시각적 세부가 있고 주제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과 내용은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 그림의 내용은 선택성을 지닌다. 현상이 가진 시각적 세부와, 주제가 가진 주관적 세부를 선택적으로 일으켜지게 한다. 이는 그림의 표면을 보는 지각 모드와, 그림의 의미를 보는 지각 모드의 구별이 있음을 시사한다. 시각적 세부에 의해 주제가 표면적으로 재현되면,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대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로부터 주제가 주어지고 내용을 갖게 된다.

이 대상을 알아차리는 방식은 월하임식 설명 방식과 올드리치 식 설명 방식이 대표적이다.

월하임은 그림의 표면을 보는 것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국면적이라고 간파했다. 그림의 표면을 보는 것을 “~에 의해 보기”라는 지각 활동으로 명명했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로서 보기”라고 명명했다. 각각의 명명은 그에 대응되는 지각 모드를 선제한다. 전자는 형태적으로 보는 것으로 시각적 세부를 보는 것이고, 후자는 존재론적 투사를 통해서 실재 대상처럼 보는, 재인적 국면이다. 이는 선택적이거나, 동시적이다. 우리는 큐비즘 그림을 볼 때 기하적 형태와 사람의 얼굴 두가지를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이는 올드리치의 구분과 흡사하다. 올드리치는 관찰과 감지를 구분했다. 관찰은 그림의 표면을 형태적으로 분별한다. 이 분별된 것에 의해 심적 대상으로서의 감지를 실행한다. 심적 대상으로 감지된 것은 나중에 그림의 표면을 볼 때 재인 조건이 된다. 이 두 철학자의 구분은 그림의 표면을 봄으로써 주관적 지각으로 이어지는 과정, 즉 “~에 의해” 봄으로써 “~로서” 보는 것, 즉 회화가 어떻게 주제를 가지고 내용을 얻는지 그 과정을 서로 같은 현상을 다른 개념으로 살펴본 것이다. “~에 의해” 관찰되면 “~로서” 감지된다. 두 철학자는 공지칭적이라고 할 수 있게 공유지하고 있다.

즉 시각적 세부와 주관적 세부 이 둘이 서로 순환되면서 기억된 바가 재인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이는 회화적 재현이 어떻게 내용을 갖는지를 결정짓는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회화가 재현한 것을 본다. 물감 자국도 보고 외곽선의 형태도 본다. 이와 동시에 표면에 재현된 대상을 본다. 이는 하나의 경험을 이룬다. 표면 지각과 대상 지각이 이중의 구조를 이룬다. 이는 대상 그자체는 아니더라도 현상적으로 이루어진 상징체계를 보는 것으로 형태와 재인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준다. 회화는 대상 그자체가 아니지만 그 이상도 볼 수 있는 주제를 지각하게 한다. 회화적 재현은 내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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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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