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의 언어분석이 가야 할 길
분석철학에서 언어분석을 하는 방법은 사용 방식으로 여러 양태가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 저는 존재의 의의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의가 보존되어야 하는 존재 이해는 우선 그라이스의 자비원리가 있는데요. 이역시도 사용 방식에 의하면 자비를 대상화하는 대상이 달라지기에 문제가 있는데, 그 의의는 일상언어에서 의미하는 존재에 대한 의의 보존에 관습적인 의미가 따라붙어 과학적인 이해에도 영향을 줄때 그 구조를 보여주고 존재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구체화하는 것이 현상학과 분석철학이 함께 가는 근본 정신이 되죠.
예를 들면
문장1. 제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서 고장났으니 고쳐주시겠어요?
에 대해 PC 수리기능사들이 이를 고쳐주는 것도 자비원리에서 요청하는 언어 이해와 같습니다. 이는 후설의 현상학에 의해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자는 것과도 통하는 언어 이해네요.
이 이해는 인식적으로 지금보다 정보 공유가 덜 된 세상에서는
문장2. 컴퓨터는 거짓말을 안한다.
와 같은 이해와도 결부되어 있는데요. 이 경우에 프로그래머나 하드웨어 제작자들은 알고 있지만 규범적인 부담에 의해 잘 공론화를 못하던 부분입니다.
분석철학이 토대론 연구를 할때 존재의 의의와 연관하는 체제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존재의 의의를 보존해주면 현상학과 함께 가는게 가능해집니다.
요즘은 문장1이나 문장2에 대한 사례적 인식이 잘 되어 있어서 양해가 되는데, 그라이스가 제시한 자비원리 논문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문장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분석철학의 언어 분석을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번 더 하는 지도 비유의 해석
박이문 선생님의 저술이시구요. 이에 대해 박이문 교수님이 논의하신 흐름만 우선 채택해서 저의 글을 썼는데 몇대목에서 보면 박이문 선생님의 해설보다 저의 글이 압축적이라 납득이 완전하게 “아하~”처럼 안됩니다.
그래도 의의는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공부가 심도있게 전개되면 저도 더 상세하게 논증하겠습니다.
박이문 선생님은 우선 철학적 앎이 추구하는 바가 과학과 친연적이더라도 과학과 스스로를 구별하는 체제가 있는 것을 제시하십니다. 철학 고유의 공통된 근원이 있다는 것이죠. 철학적으로 전개된 두개의 분야인 현상학과 분석철학도 공통된 근원에서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주목하는 논의 대상이 다르지만, 철학적 앎이라는 전제에서 공통됨을 찾으면 어떠한가라는 논제를 해설합니다.
우선 다른 점은 주로 주목하는 논의 대상으로 현상학은 인식이라는 정신 현상의 논의이고, 분석철학은 의미 이해라는 논리 분석의 논의이구요. 선생님은 이를 비교하기 위해 지도 제작과 사용의 비유로 제시하십니다. 지도가 목적지에 도달하게 돕는 참고 대상이라면, 기존의 지도에서 엄밀하지 않은 것이 현상이 되었을때 이를 잘 현상하자는 것이 현상학이고, 기존의 지도에서 기호가 달라져서 일관됨이 상실되면 이를 잘 이해하자는 것이 분석철학이다 이 비유입니다.
이 비유가 탁견으로 생각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지도라면 그 도달에 이르게 하는 개선의 방법이 대두되고 철학적인 논의에서는 이 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공통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현상학은 지도와 실재 지역에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 올바르게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논의하고, 분석철학은 지도에서 보여지는 기호의 일관된 사용에 의해 올바르게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논의하는 차이죠. 여기서 공통점은 개선에 대한 철학적 앎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옳은 현상 인식은 무엇이고, 옳은 기호 사용은 무엇인가의 논제가 중요한데, 철학이라는 고유의 학문이 스스로를 다른 분야와 구별하는 방법에 의해 결정이 되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면 철학이 과학과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은 논구의 의의가 인본주의적인 것인지 아닌지의 차이가 대전제가 되는 관건이 됩니다. 분석철학이 특별히 친연적으로 하는 것은 인지과학인데요. 철학의 구별 논제에서 일반적으로 연역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지과학에서도 인본주의를 지지하는게 가능합니다. 이 인지과학의 인본주의적인 특성이 담지된다면 분석철학이 친연적으로 보는 과학의 특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존재에 대한 의의 보존과 의의 비보존의 경향이 분석철학에 존재하고 있어서 현상학적으로 비판이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에 의해 현상학과 함께 가는지가 결정되죠. 전에 소개한 학계의 저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듯이 이를 받아들이는 인지과학자들은 현상학의 의의를 보존하는게 되네요. 한국에서는 이런 저널이 있는지는 미확인이고, 있었더라도 세태 변화가 심각해서 강단철학이니 뭐니 해서 부담이 학자마다 있을 수 있는데, 한국 분석철학계에서는 존재 의의 보존이 강세던데 요즘 세대들은 어떠한지는 생략합니다.
더 읽고, 헤겔로부터 사르트르/메를로-퐁티로 이어지는 현상학 계보를 더 잘 이해하면 현상학에 대해서도 더 자세하게 쓰는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석철학의 언어분석에 대해서만 더 자세해서 현상학이 소홀해진 기분인데요. 지금 생각난 건데 사르트르의 의미 연쇄 논의나 나타내보임과 같은 논의 또한 언어분석의 의의와 통할 것 같습니다. 화용론적인 현대 언어분석과 통할 것 같애요. 전에 쓰다가 보류한 사르트르와 일상언어분석의 논리에서 주목한 것도 같습니다. 사르트르는 정치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문예비평이나 사회비평도 많이 해서 조금 정치적인데, 그의 현상학 주저에서도 언어에 대한 이해가 드러나네요.
일단 이렇게 저의 생각을 정리해둡니다.
- 불확실한 부분을 더 추가해서 씁니다. 언어분석에 대해서는 인본주의적인 것을 근본으로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면 현상학이 비판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애요. 분야간 대립으로 보기보다 인본주의의 실현에 얼마나 가까운가로 판단하고 싶습니다.
가정 교육의 논제는 조금 엄해보이는 것 같은데 실재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한국보다 더 많은 문헌에서 논의가 됩니다. 이 논의에 대해 윤보석 선생님이 저술하신 “현대 토대론 연구”에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를 존재 의의의 보존과 인식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사상하면 느낌이 이상하시겠지만, 정말로 심각하게 가정 교육이 일으키는 현상이 있네요. 인식론은 분석철학적인 인식 구조 분석인데 이 경우에도 현상학의 의의 보존 정신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