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문화포럼 저자(글)
따비 · 2019년 09월 25일
국밥은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한류가 불어왔을 때 감자탕도 인기였다. 외국인들의 평가는 한국 음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뉴가 국밥이라는 것도 있다. 탕으로도 끓이고 국으로도 끓이고 찌개로도, 전골로도 끓이는 국밥은 한국인의 대표 일상 음식일뿐아니라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그런 메뉴다.
예로부터 고기나 채소를 넣고 끓인 국을 먹어온 한국인인데 6.25이후 힘들었던 경제재건의 역사에서 의미가 깊은게 국밥이다. 피란민들이 모였던 곳에서 따듯한 국밥 한사발은 노동인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유익한 음식이었다. 토렴 문화에서도 보여지듯이 따듯하게 한끼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도 엿보인다. 그만큼 국밥하면 삶의 애환이자 애정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다.
한국의 지역마다 특산품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인구 분포도 달랐기에 각지를 대표하는 국밥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우선 제주는 다른 지방에 비해 날씨가 더워 음식이 빨리 상한다. 그래서 시들은 채소로 나물을 하기도 했고 무칠때 너무 많이 만들면 보관이 어려워서 적은 량을 만들어다. 남으면 국을 끓일때 넣었다. 물에 된장을 풀고 나물 몇줌 넣고 끓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고기를 넣고 끓인 국이 제맛이다. 제주에서는 돼지를 주로 썼다. 돼지를 삶아 우려낸 국물에 순대와, 타재료를 넣고 오래 끓여 진국을 만들고, 기름진 느낌을 완화하기 위해 제주 특산인 모자반을 넣고 끓인다. 모자반은 제주말로 몸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모자반에 비해 수포가 많아 국물이 잘 배어 톡톡 터지기도 하고 재질이 질겨 씹는 맛이 강하다. 요즘은 모자반의 생산량이 적어서 타지에서 가져온 모자반을 쓰는데 수포가 적고 연해서 제주 전통의 맛은 아니라고 한다. 이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모자반을 넣고 메밀가루도 넣어 걸쭉하게 끓여내면 몸국이 된다.
돼지는 그냥 잡은게 아니라 도감의 지휘 하에 잡는데, 도감도 스타일이 달라서 이에 따라 음시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 나눠먹는 방식도 달라졌다.
육개장도 제주에서도 만드는데 고사리가 잘 자라는 화산암 지대에서 습기와 그늘이 많은 지형이라 고사리 생육에 좋은 환경이라서다. 다른 지역의 고사리에 비해 속에 비어 있어서 연한데 그래서 육개장에 넣고 끓이면 잘 풀어져 녹는다. 국물의 맛과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다.
부산은 지정학적 위치가 해양문화 지역이었고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들의 한끼 식사를 보충하는 식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들 힘들게 살아가는 시대에 고기국물로 된 국밥에 돼지 각 부위를 넣고 끓여 함께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했고, 다들 힘들게 일할때 정성들여 끓여주는 국밥 한그릇은 부산 사람들의 정감과 자부심을 상징했다.
고기를 넣어 끓인 국물에 정구지(부추)를 넣고 다대기도 얹어 먹으면 힘들게 일하던 분들의 기력이 보충되었다.
들어가는 돼지 고기는 돼지의 여러 부위와 돼지머리, 내장이었는데 돼지머리에서는 돼지볼살이 주가 되고, 부산물인 돼지내장, 돼지목살, 다리살도 썼다. 최근에는 삼겹살, 항정살, 갈비살도 쓴다.
특히 특기할만한게 한국식 국밥 대접 문화에서 보여지는 토렴이 대접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것이다. 토렴은 식은 밥에 국물을 말아줄때 밥에 의해 국물의 온도가 낮아진다는 것도 방지하고 전분이 빠져나오는 정도를 조절하기 위함이다. 밥을 담은 그릇에 여러번 국물을 담아다가 덜고 담았다가 덜면서 담는 방법이다. 이는 정성들여 대접하는 배려로 형성된 문화로, 늘 따듯한 국밥을 대접하려는 식문화의 하나로 의미가 깊다.
남도는 해안지역으로 생선이 많이 잡히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먹거리의 상당수가 바닷물고기였고 이를 염장해서 말리는 보관 방식을 택했다. 말린 생선은 쫄깃해지고 아미노산 증가와 같은 화학적 변화를 거치기 때문에 식재료로도 훌륭했다. 이 말린 생선을 가지고 국을 끓이면 염장한 맛이 간이 들어 간국이라고 했다. 잡고나서 즉시 염장해서 말리는 방법이라 비린맛이 없다.
주된 생선은 우럭, 조기, 민어, 숭어였고 그외 생선도 쓰였다. 이 보관된 생선의 유래는 고려시대로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에서도 탕반 문화가 특산이었다. 19세기 기록에도 탕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서울의 육개장과 구분되는 육개장 문화가 대구에도 있었다. 이를 대구탕이라고도 했는데 일본에 건너간 교포에 의해 단맛이 강해진 일본인 상대의 국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시대 피난민들이 대구로 유입되면서 국도 많이 만들어진다. 이떼 고기와 마늘, 파를 많이 넣고 끓인 국을 밥 따로 국 따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한국 양반들이나 여성들은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을 기피했는데 그래서 국 따로 밥 따로의 접대 방식이 있었고 이로부터 따로국밥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본래 따로국밥이라는 메뉴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서씨 영감님 부부가 운영하고 현재도 손자가 운영하는 식당 국일식당에서 따로국밥을 유행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특징은 다른 국밥 메뉴에 비해 대팍가 많이 들어간다. 이지역에서 파를 공급하는 또다른 영감님도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유명한 국밥은 설렁탕이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때부터 있어왔다는 선농제와 설렁탕의 기원을 추적핟는 설이 유력하다. 선농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설렁탕의 기원으로 소급하자면 세종대왕 때부터라는 설도 있고 다른 왕도 거론된다. 또는 외국 전통에서 유래햇던 말이 바뀌어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외국에서 먹던 음식이 전래되어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무엇보다도 오래전부터 서울의 대표음식이었고 도성안이나 근처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겨울에 특히 인기가 많았다. (여름에는 냉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은 음식 하나를 봐도 그 특산 지역의 기후, 문화, 역사, 경제가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은 만드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배려하고 먹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을 칭찬하는 정이기도 하다. 맛도 달라서 각지에 와서 먼거리를 와서 먹기도 하듯이 여러 맛을 즐기는 제미도 있다. 특히 한류 이후 한식의 세계화에 추가되는 음식이 국밥이니 현대적인 의미도 있다.
따비 출판사에서 내고 한국음식문화 포럼 회원들이 다섯장의 각 장을 맏아 저술한 <국밥 – 제주에서 서울까지, 삶을 말아낸 국 한 그릇>은 위에 내가 기술한 것을 섬세하게 그려낸 좋은 책이다. 제주의 몸국/육개장, 서해안의 간국, 부산의 돼지국밥, 대구의 따로국밥, 서울의 설렁탕을 소개한다. 지역의 자연, 기후, 문화, 역사를 추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라 매우 재미있다. 국밥 문화에 대해 입론을 제대로 해두고 싶은 분들께 강추한다. 왹구인 중에 한국어를 잘하는 분들한테도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구해서 보시면 배가 저절로 불러온다. 만족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