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의 묘미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있는 것 같다. 개념이면 개념, 현상이면 현상을 택해서 개념과 현상이 가능한 구조를 분석하는데 분석철학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쓰는 개념, 말, 지칭 등을 구조적으로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분석한다. 근본적으로 어떠어떠한 구조를 토대로 가능한 것인지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이 심층적 분석 대상은 형이상학적이기도 하고 실증적이기도 한데 대부분 공유하는 분석의 형식이 존재한다.
방법론적으로 분석철학의 구조보이기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지닌다. (1) 개념 분석 (2) 명제 분석 (3) 언어분석 (4) 인과 분석. 이들 형식은 독립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하나의 분석에 필요에 따라 동시에 채택되는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이 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 체험에 대해 잘 안다고 가정하고 소통을 하는데, 분석철학은 이보다 근본적으로 명료하게 분석해서 구조를 보이려고 한다. 이 경우 (1) 개념 분석의 기반에서 여성이란 무엇이고 한 체험 일반은 무엇인지 여성성, 한 체험과 같은 개념 단위로 수렴해서 분석을 진행한다. 이 개념들이 사실화된 내용을 명제로 정식화해서 그 정식화된 명제의 영향력 하에 분석을 진행한다. (2) 명제 분석의 예를 들면 “한 체험은 원한 체험과 구별된다”라고 정식화할 수 있고 이렇게 구획을 한 기반에서 분석을 진행한다. 명제는 경우에 따라 대물적이기도 하고 대언적이기도 하다. 이 경우 (3) 언어 분석의 형식을 띠게 된다. 그리고 이들 구조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적된 사태들의 흐름이라면 (4) 인과 분석의 형식도 갖는다.
이들 분석의 의의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지만 실재로 임했을 때 분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과, 구조적인 것을 보임으로써 인문적으로 양해하고 현실에서의 개념, 말, 사건 등을 보다 더 심도있게 바라보는게 가능해진다는데 있다. 더 나아가 구조 이해를 배경삼아 인본주의적인 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데서도 분석철학이 나아갈 방향이 존재한다.
분석철학의 주제는 논리, 언어, 개념, 구조, 사실, 인과 등으로 폭이 넓다. 형이상학적인 특색을 띠기도 한다. 그런데 분석철학의 전문가이신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 교수님의 철학하는 방식은 개념적이시면서도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솜씨를 보여주셔서 주목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마누라의 어법이라고 하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언어적인 주제를 선정하셔서 철학자가 수행해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의미 구조를 보여주시는 여유로운 주제 채택을 보여주고 계시고, 인본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인 자살, 사랑, 한 개념들의 분석을 아주 명료하게 해주시면서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깊이있게 해주신다는데서 아주 뜻깊은 독서가 된다. 입장적으로 다원주의자이시기도 하셔서 철학 분야와 주장에 대해 열려 있으신 것도 장점이다. 일차적으로 공감적인 태도로 임하셔서 긴장이 덜하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연구에 임하시는 모습이 후학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시다.
이번에 소개하는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은 한국어로도 철학이 가능하냐는 논제에 대한 답변으로 여러 주제들을 모아둔 분석철학서다. 분석철학이 서양에서 기원했다면 서양어로 기술된 체계인데, 이것이 외국어의 일종인 한국어로 연구될 때 체계적인 한계가 있는지, 분석철학적인 세계 공통적인 면모를 훼손하지 않은 철학이 가능하냐는 근본적 물음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님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시고 그저 견지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책 전체에서 여러 각도로 한국어로 가능한 분석철학의 일단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우선 실존주의, 해석학적 존재론, 동양철학 등의 서로 다른 분야의 철학이 실재로는 언어적으로 공통분모가 있음을 논의하신다. 내가 생각한 예를 들면 존재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각자의 체계 내에서 조금씩 다른 언어로 개진되어 왔지만, 분명히 존재와 세계라는 개념에는 각 분야의 대상이 공유지 되는 면이 크다. 이에 대해 서로 다른 분야지만 그 저변을 타고 흐르는 개념은 공통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저변에 있는 원리는 하나이기도 하므로, 이들을 이해하고 구조를 보인다면 하나로 수렴되는 정신을 밝혀낼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앞에 수록하셨다.
특히나 이 책의 백미는 여성의 한 체험에 대한 분석이다. 한 체험이라는 심리적인 체험이 있다면 이것이 다른 유사 심리와 다른 점이 있는지, 어떤 인과를 거쳐서 체험되는지, 구조 일반을 분석하시고 계신다. 예를 들면 한과 원한은 대상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존재하는지 부재하는지의 차이에 의해 구별된다고 하시면서 동양 여성의 한 체험은 대상이 결여된 감정으로 보시고 계시고, 이로부터 한이 발생해서 소멸되기까지의 실례와 명제를 분석하시고 있다. 이 과정을 읽어가는 지성인들은 실재 생활 속에서도 접하는 여성들의 감정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한 체험을 대하는 방법이나 해소 방법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행되어 인간 관계를 더 진지하게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외에도 한국적 철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시는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분석철학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철학이라고 하면 의례 기대하는 정의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분석철학서의 상당수가 근본 개념을 다루다보니 조금 현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공회전하는 왜 읽는지 모를 책들이 골치아프게 하지만, 정 교수님의 분석서들은 개념적이기도 하면서 실용적이고 실재 세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형식인데 아주 뜻 깊은 독서였다.
일단 이정도로만 소개해본다. 이분의 블로그에 가보면 연구하신 주제들에 대한 양질의 글들이 있는데 책에 대한 소개도 될 것이다. 분석철학 입문서를 독파하고 일착으로 읽어볼만한 저서다.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