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주의 철학의 프레게 비판과 의미론적 확장

언어 분석철학은 프레게가 제시한 기호와 지시체, 뜻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여겨진다. 프레게는 수학자로서 엄밀한 수학의 기호성을 토대로 언어분석에서도 공헌을 했었다.

P1. 금성은 금성이다.
P2. 금성은 새벽별이다.
P3. 금성은 개밥바라기이다.

이 두가지 명제에서 주어로 온 금성을 A로 두고, 각각의 술어에 온 명사를 B와 C로 두면 A=A이고 A=B 이고 A=C라고 할때 각각의 알파벳의 기호는 다르더라도 각각의 지시체가 같다면 그 원리는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그가 말한 뜻과 지시체의 분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학자였기에 심리주의적인 것을 배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전통은 형식주의적인 관점으로 이어져서 논리적 환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든가, 비엔나 서클에서 유래한 논리실증적인 입장들로 발전되었는데, 체험주의는 이에 대해 상상력을 제한하는 조처로 보고 비판을 하고 있다.

언어에서 뜻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체험주의는 언어 기호를 은유로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장해주려고 하기에, 형식주의로 귀결되는 논리식 환원이나 논리실증적인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다. 자연언어는 자연언어다운 면이 있고 인공언어는 인공언어다운 면이 있다. 프레게가 지시체와 사상 작용을 기호에서 발견했을때, 그는 뜻의 발생을 막아두지는 않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았다고 해석된다.

표현의 외연은 고정적이지만 이해 구조는 은유라고 할때, 마크 존슨과 레이코프가 보존하려는 기호에 대한 경험성이 중요한 전거가 된다. 위의 명제 세가지는 각각 의미론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있다. 뜻이 담지되어 있고 우리는 이를 순간적으로 상상력을 토대로 본다. 경규에게 물어봐라고 두 개그맨이 새벽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도 생각나고, 강아지가 새벽잠을 안자고 일어나 밥달라고 짖는 장면도 생각난다. 이를 A=A, A=B, A=C라고 형식화한다면 그 상상력의 다양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프레게가 뜻보다 지시체나 논리적, 추상적인 선험성을 우위로 둔 것이 이해되는데, 그가 수학적인 지시성을 의도했기 때문에 체험주의와 다름이 있게 된다고 본다.

프레게는 기호에 뜻과 같은 상상력의 대상을 끼어들게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경험 영역을 구분하면 체험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 이때의 경험 영역은 수학이고, 체험주의의 경험 영역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언어 생활과, 과학에서도 보여지는 상상력 허용 문맥의 경험 영역이므로 다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있다. 프레게가 뜻과 지시체에 대해 논의한 논문에서 그는 뜻이라는 의미론적인 대상에 대해 말살하자는 주장은 안한다.

그러나 개념의 규범적 일관성을 지킨다면 프로젝트의 시작이 수학적 기호의 의미론이라, 수학에 대해 심리적으로 의미를 주어지게 하면 안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의 경험 영역은 수학이므로 이를 동의하는 사람은 그 의의를 인정한다.

이런 경험 영역의 구분에 의하면 그가 제시한 뜻이라는 의미 작용이 분명히 언어 이해 구조의 한 방식이므로 배제하지 않고 뜻의 의의를 살려내면, 마크 존슨이 보존하려고 한 경험성을 지지하면서, 비판을 받아들여 재정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뜻은 외연을 넘어선 상상력의 긍정이며 상상력은 각자의 경험에 의해 이루어지는 활동이므로 체화된 마음이다. 수학을 공부한 사람도 늘 경험 독립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공동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험 영역의 관점에서 경험을 우선하기도 한다.

오랜 옛날의 해석 방식은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각자의 경험 영역이 의미 이해에 갖는 차이를 잘 드러내준다. 30년전에는 누군가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언명에 대해

(1) 컴퓨터는 정확한 업무 수행을 한다

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이는 IT 기술자들은 그 내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사람들이 알게 된 상식은

(2) 프로그래머가 악의를 품으면 컴퓨터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컴퓨터”, “거짓말”, “안함”과 같은 표현들은 외연은 고정되지만 각자의 경험에 의해 달리 이해된다. 즉 해커가 이해하는 방식, 보안 전문가가 이해하는 방식, 컴퓨터를 처음 접한 사람이 이해하는 방식은 다른데 그 외연은 하나다. 이 외연과 이해 구조의 상이성은 은유라는 이해 구조에서 찾아진 것으로

(3) 바이러스에 걸려서 컴퓨터가 고장났는데 봐주시겠어요?

라고 말한 사람의 컴퓨터가 진짜로 바이러스에 걸린게 아니더라도 양해되는데 이는 은유라는 이해 구조에 의한다. 누군가 골탕을 먹이려고 한 것이어도 양해된다. 그라이스가 말하는 자비 원리와도 통한다. 이는 칸트와 프레게의 전통에서 구문적인 분석과 의미 분석이 실현될 수 있는 전통에서도 마크 존슨의 제안이 성립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기호가 은유적이므로 경험에 대한 유폐를 막는다. 이 이해 구조는 경험 영역을 알면 이해가 된다.

과학적 상상력은 수학처럼만 작동하지 않는다.

(4) 1080p 24에 패치를 하였습니다

라는 설명이 인코더 설명서에 있었다면 프로그래머는 1080p 60과 같은 다른 프레임수의 기능에도 패치의 영향력이 미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과학적 표기가 은유는 아니지만, 은유처럼 작동하도록 우리가 습관화되어 있기에 가능한 휴리스틱이다.

이는 수학이 관련된 분야에서도 은유와 상상력이 작동함을 알려주는 예 같다.

즉 어떤 영역이든 인간의 경험과 관련된 모든 경험 영역은 기호를 거쳐 은유로 알려지게 되고 상상력에 의해 인도된다고 할 수 있다. 일상적 상상이든 예술적 상상이든 과학적 상상이든 우리는 우리들 나름의 방식으로 외연을 이해하고 내포에 구심점을 둔다.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본다면 이로부터 은유가 작동하는 방식인 스키마나 도식화가 주된 주제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살펴드리겠다.

개밥바라기는 저녁별이지만 일단 새벽으로 통일시켜 기술했습니다. 일종의 오타인데, 그래도 의미는 통하니 그냥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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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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