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주의가 의미를 획득하는 이유

체험주의에서 말하는 인식적 조건으로 특유적인 것은 상상력과 개념적 은유다. 사람이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때 언어에 기반한다면 이 언어의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언어가 쓰인다면 이는 실재를 기반할 것이고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한 경험 영역에서 다른 경험 영역으로 이해의 지반을 가져가는 것이 언어에 대한 이해라면, 이 언어는 개념적으로 은유성에 기반해서 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상력이 큰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상상력이라는 이해의 기반은 과학적 상상력이기도 하고 철학적 상상력임과 동시에 도덕적 상상력이기도 하며 미학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상력은 특히 윤리적인 주제에 대해서 핵심적이다. 우리는 소통을 할때 윤리적인 것이 전제가 되면 전달하려는 의미를 일부 숨기기도 하고 언어라는 매개에 의해 의미가 굴절될 것이라는 직감을 한다. 때로는 이러한 부담이 현실화되서 공공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종으로서 공유하는 무엇이 있어서 결국에는 의미가 이해되는 것이다.

우선 보편적인 토대가 있어서 이해가 된다. 보편적인 믿음은 보편적인 이론에 의해 개념이 되어 언어 이후의 인식을 하게 한다. 이에 대한 여러 철학적 논의가 있었는데 현대까지도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준 이론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이다. 칸트의 이론의 특유성은 선험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성, 오성, 감성의 세가지 인식 기제의 관련성을 해명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능력에 대해 초월적인 원리가 있어서 이를 개념화하는 것을 선험적으로 가능케 하는 원리 구조를 논구했다. 특히 도덕법칙에 대해서는 선험적으로 우리가 존경의 전제 하에 의무적으로 따라야하는 특수성을 논의에 실현함으로써 그저 선택사항이 아닌 합리적 존재라면 마땅히 따라야 하는 도덕 법칙을 수립했다. 이는 체험주의자들도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개념적, 이론적 사유가 그렇지만, 선험성이 적용되는 양태에 따라서는 도덕적 근본주의가 되기도 한다는데서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는 도덕적 의미가 있지만, 이는 실재 인간에게 부합되어야 하는데 정언명법이 정언명령으로 바뀌어 가르쳐지기도 하듯이, 도덕적 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즉 도덕적 숙고라는 것이 이해되는 현실적 맥락이 있어서 선험적이기만 하기보다 채택적인 것이 주목될 때 인간의 실재 마음과 간격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예로 드는 것은 사변적인 철학의 특성과 몸의 담론이 소홀하게 전개되는 것의 현실적 채택의 양상이다. 의무론이 지닌 채택적 의의가 도덕적 구속력이라면, 이로부터 조건화된 도덕의 의미는 칸트가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즉 선험성과 범주적 이해에 기반한 제약 조건이 된다.

이에 대해 마크존슨이 저서에서 말한 예는 범주적 이해 즉 “남성은 무조건 성적인 동물인가?”라는 논제에 대해 남성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인간종으로서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합리적인 시민으로서의 자제 능력이 있듯이, 선험적으로 참이라고 여겨지는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는 능력이 남성에게도 있는데 이는 “남성성”이라는 범주적 상식과 다른 또하나의 실재적 예다. 이를 응용하면, “여성은 요조숙녀여야 하는가?”와 같은 논제에 대해서도 확장이 된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의 특유한 능력인 상상력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 이 상상력이라는 것은 언어적 은유성을 개념적으로 알고 이에 대한 도덕적 실천을 하는데도 쓰인다. 특유하게도 체험주의는 비명제적 앎도 인정한다. 영상도식적으로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식의 기반이 있는데 이는 언어로 규명되지 않아도 우리 앎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토끼가 우리 안에 갇혀있다
토끼가 우리 밖으로 나왔다.

커피가 커피포트 안에 있다
커피가 무릎에 쏟아졌다

와 같은 서로 다른 현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원 안에 들어있는 점이라는 영상도식과, 원 밖으로 나온 점과 점의 잔행방향으로 그려진 화살표라는 영상도식을 공유한다. 이는 다른 현상이지만,

불쌍하다, 안됐다
통쾌하다

와 같은 공통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우리는 각자의 삶의 조건, 즉 체화된 기반에서 어떤 윤리적 실천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서로 다른 이해와 현상의 혼재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할 때 우리는 체화된 것에 기반한 인식 활동을 한다. 영상도식이나 개념적 은유는 칸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지과학적 개념이고, 범주의 엄격함보다는 현상을 이해하는 상상력의 기능을 칸트에게서보다 모든 분야에 넓히는 것이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도덕적 존재이고 사변적인 구조보다도 인지과학적 토대 위에서 바라볼 때 도덕적 가치에 대한 공통성을 주시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있다. 범주적 사고가 이성과 상상력을 철저하게 구분하듯이, 유전자에 대한 이해도 같게 되기도 한다. 즉

그의 유전자는 키가 180cm까지 자라나게 한다

이를 과학과 칸트에 감명받은 시도로 해석하면 무조건 180cm라고 믿고 사변적으로 과학의 힘에 편승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인지과학과 친연적인 생명과학에 따르면

어릴적에 우유를 많이 마시면 키가 170cm가 안되게 된다

라는 발견이 가능해진다. 유전자와 우유는 키를 결정하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지질 과다 공급이 어린 나이에 될때 성장이 빨리 되고 빨리 멈춰서 유전자와 우유에 대한 일반 인식과 다른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 사변만으로는 규명될 수 없는 무엇이다.

일단 이런 이해가 가능한 분야인데 오늘부터 다시 탐구에 들어갔다. 보다 더 심화한 책을 기다리고 있다. 일단 이렇게 해둔다. 조금 불충분해보인다. 물론 의미 전달은 되었는데 이해가 잘 되실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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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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