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주의가 바라본 인식적 힘과 외연적 질서

밖에 나와 체험주의 저서를 조금 더 읽었다. 두시간 조금 넘게 있던 것 같은데 한시간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체험주의에 대한 직관이 어느 정도 맞음을 확인한 것이고, 철학자가 정식화하는 개념과 구조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전체적인 논증의 방향성 정도만 살펴봤다. 그가 든 예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인식적인 힘과 대상적이고 물리적인 외연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 실재 문헌에서 나온 단락을 토대로 해명하는 것이다. 나도 동의하는 기본적인 구분은 이렇다. 인식적인 힘은 외연을 결정하고 외연은 인식적 힘을 결정한다. 은유적인 문장들을 볼 때 인식한 바와, 인식한 바를 문장들로 변환할 때 은유적인 이해의 구조가 성립한다. 이는 규칙 준수적인데 주제가 주어지면 그 주제에 맞는 물리적 질서가 전면에 불러일으켜져서, 아무리 난해하거나 뭔가 의미가 고정적이지 않은 기술에 대한 이해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인식적 힘과 외연적 질서의 사용 방식은 언어를 읽고, 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의 감정도 들게 하고 거부감의 감정도 들게 한다. 아무리 솔직하게 말하는 분위기로 허용된 조건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조금씩 기호에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을 숨겨두기도 하고 비직접적인 표현으로 언어를 구사하는데 이에 대해 은유적 투사를 함으로서 의미를 이해하고 결정하는 것이 언어 이해의 구조라고 하고 있다.

은유적 투사는 우선 주어진 주제에 대한 일반적 질서가 전제가 되는 것이고, 이로부터 인식적인 것을 이끌어내는 서술적 특유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 규범인 경우 더 도드라진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면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느끼기도 하고, 뭔가 윤리적으로 판단 대상이 되는 조건에 처하면 공통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있다. 이런 태도는 사회 규범이므로 규칙적이다. 표현 구조상 부분적으로 묘사된 바에 의해 기호에 이어진 각자의 경험이 채택되어 이해 구조상 규칙 준수적이 된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인식적 힘이다. 이로부터 은유적 투사의 규칙성이 존재할 수 있어서 우리는 이 규칙을 토대로 사고하면서 기호에 연관된 각자의 인식적 차이를 조율하고 좁혀나간다.

이는 소통의 관점이므로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별히는 은유가 사회적 산물임을 말해준다. 사회에서 이루어진 문화에 의해 준수해야 할 규칙이 선제되어 있고 이에 기반해서 언어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표현 구조상 규칙에 의하지만 이해 구조상 여러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는 일정 부분 자유로운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적 힘이 외연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그 포함된 자유를 결정한다.

이 이해를 잘 발전시키면 의미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가능한 소통의 문법적 구조임이 밝혀질 것 같고 이해 구조 또한 이 규칙에 기반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제약적이지만도 않고 무정부적이거나 신적 관점인 것도 아니다. 적절한 사회 규범 하에서 성립한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배경을 가지고 특정 언어의 사용 방식이 결정되며 이해 구조도 이에 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맞는 외연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사용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일정 부분 자유로움에 의한 것이다.

마크 존슨이 예를 든 언어 사용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자제하기도 하는 사회성의 전략으로 은유가 사용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이것이 기호에서 적절하게 감추어지면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언어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되었다. (직접 보시면 조금 쎈 예 같을 수도 있다) 그가 문화적인 사회 규범을 말하는 서두의 시도는 억압적이라기보다 옳은 이성적 주체로서 누구나 구사하는 언어 전략이 있어서 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넓게 보면 핑커가 제시한 언어 본능과도 통할 것 같은데 핑커가 언어 본능에서 서술한 서두의 묘사처럼 이해되는 공유되는 구조로 보인다.

인간이 자제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란 것은 레이코프가 제시했듯이 정신분석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기호 사용이 어느 정도 문화에 속한다면 은유적인 구조가 있어서 그 구조에서 각자의 감정이 담겨지게 되는 심리적 요인도 이해에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후에 어떤 개념을 소개할지는 확인을 안했는데 우선 주목되는 개념은 명제 내용이라는 것은 몸에 체화된 비명제적 도식 구조의 복합물이다라고 하는 대목이다. 비명제적인 것의 예로 그는 정서 표현, 영상 도식, 언어 이전의 물리적인 지각 대상을 든다. 이 예로부터 어떤 설명적 이점이 있는지는 더 읽어봐야 안다. 이 표현의 복합물이 기교인가, 투사인가, 수식인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인가와 같은 이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호 해석이 한 경험 영역에서 이루어진 해석을 다른 경험 영역으로 넘어서 가져가 이해하는 활동이라면 경험 영역이 무엇인지도 해명되어야 할 것 같다. 이게 내가 해야 할 논증의 일단이다. 마크 존슨은 은유의 이해에 필요한 합리적 동물로서의 종, 사회적, 문화적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분명히 보여주려고 강한 임팩트의 예를 들었는데 이에 대한 감정 이입은 없었다고 말해둔다. 같은 남성이더라도 자제를 하는 과정의 예로 든다. 사회적으로 편재된 이해, 의견 차이가 비교적 분명한 이해, 이를 적절하게 피하면서도 체험주의가 강조하는 경험적으로 책임있는 태도가 나타난 예시로 이해했다.

보다 더 개념 채택적인 이해는 공부가 진행되면 하겠다. 이번 글은 개념 이해보다는 저자가 기술한 흐름의 의의만 살폈다. 그가 직접 개념 표현으로 해설한 것들이 있다. 이후의 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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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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