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도 철학적 탐구가 있었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동양철학이나 토착 종교의 형태로 되어왔기에 서양과 조금 다른 면모를 지닌 전통이지만, 서양에서도 있었던 사람의 윤리의식에 대한 고찰이나 특정 철학 개념으로부터 발원한 체계적인 논의도 있었다. (기질지성이나 리기 논의가 그 예이고, 이런 논의를 이끌어온 개념들이 다수 있다) 다른 동양적인 국가들에서처럼 삶의 도리나 수양의 관점이 우세한 전통이었고, 서양에서 자연철학적인 이론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정교해지는 과정에서 있어온 예리함이나 논리가 없었다고도 되어 있으나, 들여다보면 동양철학도 개념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려고 한 것은 동양이 우세하냐 서양이 우세하냐가 아니다. 철학적 사유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어온 전통이라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개념이라는 토대위에서 이루어져온 지성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툭 던져서 즉석해서 만든 생각은 철학이 아니다. 개념에 기반해서 해야 하는 활동이다. “그사람 개념있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개념이라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역할임을 알고 있는 것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전제 조건이기에 개념있게 살아가야 하는 지반으로서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개념이 바로 서 있다는 것은 그저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판단의 근거를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을 알면 현상만으로 세상을 보는게 아니라 현상 배후의 원리에 대한 인식력이 길러진다. 예를 들면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가?”라는 논란이 되는 물음에 대해 그저 문화적인 차이라고 인식만 하고 넘어가는게 아니라, “동물도 권리가 있는가?”와 같은 동물애호적인 사유의 기반에서 출발해서 “식용으로 기르는 축산업계의 비지니스적인 관점”과 같이 자본주의 체계로의 관심으로 확장되고, “한 국가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문화적 관점이 다른 국가의 문화에도 똑같이 옳은 것인가?”와 같은 윤리적 공통기반으로서의 규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개고기를 혐오하는 것과 소고기를 먹는 것은 등가가 아닌가?”와 같은 예리하지만 문화에 상대적인 존중 의식으로 관심이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관심들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믿음이고, 믿음만으로는 도그마가 된다. 이 믿음을 근거세우는 것은 개념적 사유에 기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철학이 그 근거를 제공해주는 학문이라면 철학적 탐구가 현실 세계의 문제들을 구체화하고 관점을 지지해주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에서 철학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고 이로부터 철학적 탐구의 필요성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개념이 바로 서 있다는 사실은 삶에서 부딪히는 판단끼리의 충돌이나 가치들의 충돌도 해결하는 혜안도 제시한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믿음을 보편적 진리의 규칙으로 정한 것도 철학적인 논의에 의해서다. 원시 시대에는 공동체가 존재했고 서로 집단으로 돕고 살았지만, 철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기에 약육강식의 사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발달되고 사회적인 인식이 고양되면서 철학이 발원한 이후부터 개념이 논의되고 사회적인 혼돈을 합의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각자의 권리 추구가 충돌할때도 철학은 최대한의 효용을 갖는 최소 근거를 논의한다. 최소한의 의미누수나 최대한의 합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정교한 언어 논증으로 이끌어낸다. 철학적 개념을 체계적으로 들여다보면 볼수록 동일한 사태에 처한 존재들은 영감을 얻을 것이다. 즉 바로 세워진 개념은 사회적 존재인 개인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고 사고의 심도를 높혀주는 것이다.
각자가 언어로 구체화는 못했어도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지식 또한 철학의 개념을 참조함으로써 상세해지고 체계적이 될 것이다.
철학은 이성의 언어로 합리적인 사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참된 믿음을 어떻게 담지할 것인지 예리하고 합리적인 규칙을 근거로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키고 논의한다. 합리성이 즉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해의 심도가 깊어지고 현명한 판단에 이를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사유의 과정에서 개념이 창안되고 협의가 이루어지면서 하나의 진리체계가 되는 것이다. 이 진리체계에 의지해서 삶을 살아가면 그 삶은 살아볼만한 가치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 세계제작으로서의 능동적인 삶이 될 것이다. 이 역시도 철학이 담당하는 전형적인 기능이다.
따라서, 철학은 합리적이고 진리 근거를 논의하는 필요에 의해 우리에게 효용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