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역사, 문학이 필요한 이유

철학과 역사, 문학은 인문학의 3대 학문으로 人文學으로 통칭됩니다. 사람의 글이라는 의미에서 학문이라는 것이죠. 이를 人紋學처럼 표기하고 사람의 무늬라고도 하는데요. 이처럼 인문학은 언어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의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글이나 말은 언어 생활의 두 중심축인데요. 이 두 중심축은 큰틀에서 통용되는 개념에 의해 인식되고, 이 개념들의 조합이 되는 경우에 따라 각자의 특유성으로 발달이 됩니다.

예를 들면 문학가라고 할때 이문열과 이외수가 같은 문학가라서 공통점이 있어도 다른 점도 있듯이, 이해의 큰틀이 존재한다면 세분화되면서 분화되는 특징들은 각각 다르게 되죠. 여기서 공통 특성도 존재하게 되고 차이점도 존재하게 됩니다.

이를 강준만 교수님이 이문열 작가님을 비판할때도 유의되는 조건인데요. 이문열 작가님은 작품 서술의 문체는 무겁지 않은데 무거운 인간사의 주제를 잘 다루어 재미를 주고 느끼는 바도 있게 하는 성공한 문학가였는데, 시사 문제를 논의할때 있던 일로 인해 보이콧도 당하셨네요. 이때 조건이 되는 전제는 사회적 비판에 의해 끌어내려진 존재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상당히 차분하고 글을 잘쓰면 이를 반감가지고 본 전제가 있을때, 인상비평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의 큰틀은 존재하고, 서로 겹치는 부분은 있더라도 세분화된 특징은 각자가 다르기에, 공통 특성이 있어도 차이점도 있다는 것이 유의되게 되죠.

이러한 전개를 보면 많은 분들이 강준만 교수님의 대세적인 획득에도 불구하고 이문열 작가님을 즉각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한 비판에 휩쓸려서 비판에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게 있습니다. 특히 생계지속에 필요한 중요한 목적으로 특정 분야의 기술을 배워나갈때, 생각보다 잘 안되면 자괴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 자괴감이 느껴지면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해서, 여기에 보조조건으로 누군가 잘하는 것을 보면 개인에 따라서는 요즘 유행하는 보복운전과 같은 대처를 기술 배움 현장에서도 적용하고 싶은 충동을 실천하네요. 현상은 다르지만, 이문열 작가님이 비판받는 것도 근원이 같은 것 같애요.

즉 감정적으로 대하느냐 이성적으로 대하느냐인데 이 경우에도 친절하게 자괴감을 양해해주는 경우에, 특정 표현에 결부된 의미 연관을 새롭게 보도록 해준다면 다들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고정관념이고, 특정한 인식 주제에 대해서는 속된 말로 인지과학자분도 말씀하신 까임방지권이 있어서, 친분이 있어서 까임을 방지했든, 강준만 교수님처럼 시대를 잘 포착해서 까임을 방지했든, 고정관념이 작동하면 특정 표현을 배려로 의미 전환을 하는 경우에도 이문열 작가님 비판할때의 감각지각 모드가 있게 되기도 하네요.

인문학의 단점은 곧 장점인데요. 특정 문장의 의미 전환을 자주 하기도 하고 단어 하나만 독법이 바뀌어도 의미 전체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제시 기법이 있습니다. 이를 구명적으로 한다면 일단은 장점이고 규제적으로 한다면 단점인데, 여러 세상사를 접해보시고 이에 대한 해석 체계를 접하신다면 알게 되실테지만요. 이 구분이 생각보다 상대적임을 알게 됩니다. 기준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달리 해석하게 되는데 강준만 교수님은 이문열 작가님을 비판했지만, 이문열 작가님과 친한 분들이나 구명적인 분들은 이해를 해드리는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니 인문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구요. 구명이든 규제든 필요하다면 이를 분별해서 써야 하는데요. 융 학파 전문가분들이 프로이트와 구별하는 언급을 하시고 치유를 하신다든지, 표창원 교수님이 경찰학 전공이시지만 누명 가능성을 강조하시는 것도 인문학의 장단점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며, 일반화에 의한 오류가 늘 있을 수 있어서입니다.

철학과 역사, 문학이 필요하다고 할때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리 이해되니, 이에 대한 비판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천하기나름이구요. 바쁜 실생활에서 잘 접해보지 못한 사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기능도 인문학이 담당합니다.

그냥 시대정신에 의지해서 누군가 비판받을때, 한번 더 생각해보고, 누군가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면 분노와 공분만 하기보다 이에 대한 특성을 살펴서 조언을 해본다든지의 기능은 인문학에서 잘 길러주는게 됩니다.

전에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저서가 번역출판되었을때 한국에서도 성차별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에 대해 남성분들이 동감을 표명했는데요. 보통 심리학한다고 하면 다들 고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실재로 보면 다들 공통적인 규율은 경험하지만, 남성에 대한 판단이나 처우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피터슨 교수님은 영어권 방송에 나오셔서 남성을 옹호한 참여로도 유명한데요. 한국의 바뀐 문화처럼 심리학하면 남성을 비판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런게 고정관념입니다. 이는 현상은 달라도 인식후 실천에 도입하는 실천 내용이 달라지는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즉 나는 저 사람이 싫은데? 라고 하고 임하면 전에 있던 모 가수분들이 꽃뱀 같은 시도에 의해 소송까지 간 사례가 되네요.

이런 일련의 인물에 대한 이해에 대해 199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가 예절이나 겸손을 강조하기도 했던 것도 이런 인물 이해에 人文뿐아닌 人紋을 존중하기 위함이었는데요. 이는 한 사태에 결부된 논리가 서로 존재하지 않을 듯한 모순적인 실천이 혼재한게 현실적 사태라, 구명이어도 규제가 되기도 하고 규제여도 구명이 되기도 하니, 고정적인 이해보다 상대주의적인 관점이 중요할때가 있습니다.

이 구조를 보여주는 것을 잘하는 분야가 철학, 역사, 문학이라는 것이죠.

우선 철학은 개념과 개념이 실현되는 사태를 논리적으로 논의하는 특성이라, 심도 있는 현상 이해에 좋구요.

역사는 문화와 사회의 시대정신과 변천을 통시적, 미시적으로 보면서 정의하는 시대 이해에 좋구요.

문학은 인간의 삶에 결부된 감정과 정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습니다.

이역시도 상대주의적인 대상으로 보면 좋은데, 상대주의도 진리결정이 가능한 구현이 가능합니다. 일단 기준에 따라 인식이나 이해가 바뀌기도 하고 서로 다르지만 참이 된다는 것에서 전제를 하고, 이를 양해가능함으로 보면서 상호존중으로 간다는 의미인데요. 모든 진리 결정은 명제에 대해 상대적, 관계적(relative)이라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이네요.

문사철이라고도 불리는 인문학의 3대 분야도 활용하기 나름이고 상상을 넘어서는 인식과 실천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해의 심도와 판단의 정당함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Avatar photo
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