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대왕조에서 황제와 환관의 권력적,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논함

고대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역대왕조는 황제 중심의 군주 정치 체제였다. 황제는 거대한 궁궐에서 생활했으며 관리들과 궁녀들의 인구수도 매우 많았던 왕조가 대부분이었다. 황제가 행정을 직접 처리하기보다 출퇴근 하는 신하들과, 궁궐에 거주하면서 황제를 지근에서 보필하는 관리들에 의해 실무가 처리되었다. 특별히 환관은 황제와 어릴적부터 함께 자라난 존재들로 환관의 지근 거리에서 시중을 들던 존재들이라, 정치에 관여하는 길이 더욱 더 열려 있는 직책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황제의 속마음을 잘 알았었고 황제도 환관을 신임하였다. 황제는 최고의 지존이면서 환관은 미천한 관리였으나 둘의 연합관계는 중국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은 관계였다.

환관들은 단결력이 강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의해 일신 영달을 위해 거세하고 궁궐에 들어온 그들은 대를 이을 방도가 없어서 가족이 대신하는 것을 못했으므로 같은 환관끼리 단결을 잘했다. 그리고 황제의 신임을 얻어 생활을 했으므로 황제의 권력 유지에 봉사하기도 했다. 이들의 조직력, 단결력은 황제가 외척들로부터 찬탈 위험에 처했을때 황제를 보필하고 외척을 견제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그러나 황제도 환관들의 계략에 말려들어 교체를 당하기도 했다.

황제의 권력이 군주 정치였다면 환관은 궁궐 정치의 표본이었다.

역대 왕조를 열은 황제들은 궁궐 경험뿐아니라 군대 지휘 경험이나 궁궐 밖 경험이 많았다. 그러나 황태자들은 궁궐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존재라, 매우 유약하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실권이 있을 때까지는 외척이 섭정을 한 것이 일반적이다. 외척은 임시로 섭정하다가 어린 황제가 나이가 들면 권력을 양도해야 되었으나, 역심을 품고 찬탈을 하기도 한다. 이를 견제하고자 환관을 등용해서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도록 한 것이 중국 역대 왕조의 특징이었다.

환관은 거세를 하고 궁중에서 일하던 관리를 뜻한다. 본래 환(宦)자는 벼슬을 의미한다. 즉 궁궐에 기거하면서 일하는 관리를 뜻한다. 다른 관리들은 출퇴근을 하면서 업무를 처리했다면 환관은 궁녀들처럼 궁궐 내에 거주하면서 업무를 처리했다. 궁궐이 전제 왕권에 의해 궁녀의 수가 수천명을 넘었는데 환관들이 궁녀들과 간통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궁궐 내의 노동력을 맡게 하기 위해 거세한 남성들을 기용하는데 이들이 환관이다.

이들은 황제와 친밀했으므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된다.

중국 환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정리된 기록은 주례라고 해서 주나라 시대를 다룬 자료가 존재한다. 주나라가 기원전 8세기경에도 있었으므로 적어도 기원전 몇백년에는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상세하지는 않아도 주나라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상나라의 갑골문을 보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문자 옆에 칼을 형상화한 문자를 두어 오랑캐를 잡아다가 거세하고 궁중 업무를 시킨다는 의미의 문자도 발견된다. 오랜 옛날에는 오랑캐나 정복 지역의 주민을 잡아다가 환관으로 썼던 것인데 점차적으로 선발 형식으로 거세 요청을 해서 통과한 사람들에게 환관의 직무를 맡기는 형식이 된다.

요약하자면 황제의 측근에서 황제를 보필하는 관리인 환관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역사에 남은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 소설에서 후한말에 십상시의 폐해가 나오는 것도 환관들의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이에 대해 논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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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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