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망향가로서의 마음 “홍백가합전”

시대상으로 1940년대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1945년에 패전후 무조건 항복을 한 이래 피폐해진 국내 사정과 미군주둔군에서 운영하던 기관에서 검열을 하던 시기다. 1945년 일본인들을 달래주기 위한 가요방송으로 기획된 라디오 방송으로 홍백가합전이 기획된다. 이 라디오 프로는 미군사령부로부터 사전검열을 받았는데, 미리 기획되었던 프로의 제목인 홍백가합전을 영어로 번역한 제목에 battle이라는 말이 들어가자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서 battle이라는 말은 통과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 홍백노래시합으로 바꾸어 통과되어 드디어 첫방송이 시작된다. 라디오 프로로 단발로 방송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공백기를 거쳐 1951년에 텔레비전 프로로 개편되어 이어졌고, 지금도 방송되는 연례 행사로서 최고시청률이 80퍼센트를 넘는 대인기 프로였다. 70회를 넘긴 요즘은 30에서 40퍼센트 사이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이는 여전히 타인기프로의 두배가 넘는 시청률이다. 그런만큼 상징성이 크다.

홍백가합전 출장은 그해에 제일 인기있고 영향력있는 가수만을 선발하기에 가수 인기 척도로 대표적인 지표가 되기도 한다. 가수 이해뿐아니라,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방송이라는 상징성과, 일본인들의 심정이나 역사의 한페이지가 되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쇼와시대 데뷔한 아이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회자되는 프로그램이다. 한마디로 말해 일본 가요계에서 한해동안 제일 중요한 프로그램이 홍백가합전이다.

구성은 홍조와 백조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멤버들이 노래 대결을 하는 구성으로 시대가 흘러갈수록 여러 기획과 연출을 일신하여 오늘날에도 지속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전후 일본 사정상 미국 눈치를 보았고, 피폐해진 전란의 이후에 도쿄로 상경해온 지방 실향민들이 많았던 방송 초기에는 이런 시대상에 어필하는 예능에 대한 요구에 부합하여 시대상에 맞는 노래들이 많이 선정되었다. 초기의 이런 사정은 사회 메인스트림이 바뀌던 1970년대에도 어느정도 이어지고, 시청률 저하를 막는 여러 참신한 시도를 통해 일신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1940년대에 단발로 기획된 홍백노래시합이 몇년의 공백기를 거쳐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재개된 이후, 시대의 변화를 따라 몇번씩의 변화가 찾아온다. 우선 전쟁후 피폐해진 고향에서 도심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망향가가 속속 발표되어 그 가수들이 출장하게 되었다. 지금 읽는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홍백가합전의 기원이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다. 전쟁과 엄숙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도 소개하면서 한시대를 풍비한 문화로 해설한다. 시대가 바뀌어 1960년대  이후에 포크, 롹, 뉴뮤직적인 새로운 문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에 대해서도 방송에 반영이 된다. 다시말해 기본 포맷은 가요 프로지만, 시대상에 맞추어 이루어진 기획이 특징이었고 이를 살펴보면 그당시 일본 가요와 시대상까지도 보여주는 장수 프로그앰이었다.

기획면에서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직접적인 에피소드로 이런 것이 있었다. 경쟁사였던 TBS가 막 민방을 시작하던 즈음 전속계약으로 출연진들에 제한이 오자 홍백가합전을 제작하는  NHK에서 내놓은 해법이 있었는데, 가요곡 이외의 장르인 재즈나 샹송, 성악 같은 분야의 가수도 출장시키는 것이었다. 가수 외적인 심사위원도 유명 작사가 같은 음악전문가 말고도 그당시 인기 높은 유명인사로 대체하기도 했고 홍조나 백조 응원단 일원으로 코미디언을 기용하기도 하는 등의, 그당시로서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시도를 했다.

가수 선발은 일정한 기준에 따랐고 사회자 선발도 중요한 화두였다. 가수는 누가 선발되고 누가 선발이 안되는지에 의해 이후의 인기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 중요했고 사회자들은 특유의 개성으로 인해 유행어도 만드는 등의 화젯거리가 있기에 회자된다. 특히 사회자는 홍조와 백조 사회자를 각각 여성과 남성에게 맡기기도 했고 일정 기간 동안은 남성에게만 맡기기도 한데 특징이 있다. 사회자의 대본은 자유로운 애드립을 하기를 명시했는데, 사회자에게 권한을 많이 주는게 때로는 유행어도 남기고 때로는 논란도 남기는 등의 역사가 있어서, 출장 가수 선발에 대한 예측 기사 외에도 사회자가 누군지도 화젯거리였었다.

방송이 스케일이 크다보니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있었고 기획의 의미로 채택된 사회적 배경도 나오는데 그당시 사회적인 화젯거리가 된 것을 방송에 반영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방송 시간의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차마시는 동안의 즐거운 화젯거리로 다루게 하기도 하였다. 초기 분위기는 망향과 실향의 아픔으로 그당시 고도경제성장에 의해 도시화가 이루어진 시대상은 고향에 대한 망향가의 기폭제 역할을 강조하는데 홍백가합전의 향수가 느껴지는 일화가 나온다.

다시 말해 실향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노동의 주체로서의 일본인들의 마음을 위로 하는 것으로 시작한 방송 모토가 한동안 홍백가합전의 방향성이 된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가 되면 포크송의 대두가 홍백가합전에도 시대상이 된다. 그당시 사회의 메인스트림으로 성장한 전후세대 대학생들의 일상적인 문화를 주로 다루어온 포크송은 사회에 반대하는 개혁적 인디문화의 하나였기에 홍백가합전 출장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백가합전처럼 상업적인 가수의 성공을 토대로 한 선발에 따르면 사회 비판적인 정체성에 자가당착이 된다는 것에 기반한 의연한 결정이었다.

포크송 가수들은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을 기반으로 해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결혼과 동거도 그 소재가 된다. 퇴폐는 아니고, 대학생들이 익히 하는 생활상을 서정을 가미해서 노래한 노래들이다. 튤립의 사보텐노하나나 이루카의 나고리 유키 같은 노래들이 그런 유형이었다. 이는 시대의 자의식이 1940년대 1950년대의 어버이 세대에서는 실향의 노래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197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일상에 대한 자의식을 지닌 노래가 주류의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시대의 다른 현상으로 고도경제성장기라는 것이 중요한 시대상이었다. 도시의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고향이 사라지고 도로가 닦이고 하는 과정을 목도한 뮤지션들이 포크송 뿐아닌 롹 같은 노래도 형상화하는데, 롹은 어느 정도 시대의 정제가 있었으나,  가감없는 가사들이 특징을 이루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로 홍백가합전도 몇차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아이돌팬분들에게 특별한 시도는 아이돌도 홍백가합전에 출장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가요계에 스타가수들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현대적인 아이돌의 시작은 1970년대로 본다. 특별히 칼라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졌고 가수들의 용모와 비교적 감상이 용이한 환경 하에서 학생들의 수요도 늘어난다. 학생들의 최대 관심은 아이돌의 외모나 복장에서도 발견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 여러 현대적 아이돌 가수들이 데뷔했는데 이시기에 그때까지도 부동의 인기척도였던 홍백가합전에서도 시대상이 반영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홍조와 백조의 토리 (여팀, 남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수들) 로 아이돌 가수들이 선정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야마구치 모모에와 사와다켄지 였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1978년 출장시 플레이바쿠파토투를 불렀고 사와다켄지는 LOVE (다키시메타이) 를 불렀다.

두가수는 높은 인기도도 그랬지만 그당시 가요계의 인기몰이가 아이돌계에서 한창이던 시절이라 출장은 해도 토리를 맡기는게 파격적이었다. 물론 그전에 미소라히바리가 20세의 나이로 토리를 맏은적이 있지만, 엔카 가수로서 거물급 엔카 가수가 토리를 맏는다는 불문율이 깨진 대사건이 젊은층이 좋아하던 아이돌 모모에와 켄지의 기용이었다. 이 두 가수 외에도 산닌무스메로 불린 코야나기루미코, 아마치마리, 미나미 사오리와 신고산케로 불린 노구치고로, 고히로미, 사이조히데키 등도 데뷔해서 출장하고 코이즈미쿄코, 이와사키 히로미와 같은 가수도 출장한다 이들의 기용은 홍백의 아이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후에도 여러 정통파 아이돌들의 출장이 결정되게 되는 유행으로 이어진다. 또 한편으로 타방송국에서 홍백의 높은 시청률을 견제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돌들의 출장을 결정하는게 유리했었다. 아이돌로 데뷔한 핑크 레이디의 경우에도 출장이 결정되는데 자선콘서트 참여를 위해 사퇴했다는 뒷얘기도 전해진다.

정리하자면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아이돌의 흥망이 홍백가합전에서도 반영되었다는게 하나의 특징으로 되었다.

1990년대 이후의 홍백의 또하나의 특징은 다큐멘터리화라고 회자된다. 망향과 실향의 사회 분위기가 완화되고 냉전체제 중식과 자본주의 사회의 거품이 꺼지면서 이전에 늘어났던 중산층이 서로에 대한 불안감을 높히던 시기에 홍백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불안감은 현실을 추구하게 되고 전처럼의 감성만으로는 어필하지 못하게 되는 사회분위기를 만든다. 리얼리티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시대의 이슈에 대한 소개가 프로그램이 대거 반영된다. 그 리얼한 기획의 시작으로 스케일을 크게, 일본 외적으로 “전지구 규모의 프로그램을 21세기로 전달할 정도의 변화”를 기획한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는데, 그 첫방으로 나가부치 츠요시라는 싱어송라이터를 베를린 장벽에 보내 공연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이는 망향가나 휴먼드라마가 아닌 리얼리티를 살려내려는 시청자 기호의 변화를 포착한 시도였다. 차가운 냉전의 종식. 외국에 사정에 대한 관심. 역사의식 등등. 거기서 다큐멘터리화 된다는 평이 따라나오는데 전후 일본이 국력이 회복되면서 전지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냉전 종식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생중계였다.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어느 평자는 베를린이 일본의 권역 밖이었고 퍼포먼스적이라 아주 큰 의미부여는 안하는데 그래도 예능프로에서 국제정세를 반영하는 기획을 성사시킨 것은 대형중계의 한 사례로 보고 있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새로운 리얼리티의 반영의 시초로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이시대를 보면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경제침체기가 생각나는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정치사회적인 일원이 되려는 분위기도 영향을 준 것 같은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이 불안감이 커진다는게 경제침체기의 일들, 한국에서도 IMF 이후 달러화 환율이 반토막 나고 경제가 어려워질때 리얼리티 방송에 대한 수요가 늘은 시점과 맞물리는데 이런게 일본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첫 텔레비전 방송이 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홍백의 기획 흐름은 이렇게 변화한다. 망향의 정서를 달래주는 컨셉→대학생들의 일상에 대한 묘사기 된 포크송의 대두→아이돌의 흥성→휴먼드라마의 반영→국제화→리얼다큐멘터리화 이 과정이다.

홍백의 리얼다큐멘터리화가 이어지면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게 된다.  2000년도에 시작한 NHK 프로그램 “프로젝쿠토 X”에서 1950년대 알프스 지역에 댐 공사를 하러 나간 일본인들이 여러명이 죽고 다치는 과정에서도 공사를 진행한 이야기를 소개했었던 것과 연관된다. 과거 전후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들게 된 시기와 맞물리는 시절에 행해진 공사 현장을 그당시 총책임자였던 분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공사에 참여하다가 사망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찾아가는 사연이 공개되어 다큐멘터리치고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홍백가합전에서도 소개하는데, 베를린 장벽에 가서 한 퍼포먼스보다 발전된 형태의 기획이었다.

전후 일본의 부흥에 대한 관심도도 높히고 이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인간적인 인식도 높히는 시도로 리얼다큐멘터리화된 홍백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한다.

이 방송과 함께 나간 노래가 오리콘차트에서 연속 174주 차트안에 머물렀다는 것도 전해진다.

1990년대 이후에는 초인기 스타였던 아무로 나미에 같은 가수와 모닝구 무스메와 같은 그룹 아이돌도 인기를 얻고 SMAP이나 아라시도 등장하고, 디지털 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상 캐릭터도 인기를 얻는다. 홍백가합전도 이 영향을 받는 구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즉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는 쇼와시대 아이돌 외적으로 신세대 아이돌이 출장하는 것이 특징이 되었고 특히나 인터넷 상에서 창조된 디지털 캐릭터도 인기를 얻는 또한번의 세대교체가 있게 된다. 이 디지털 캐릭터들은 성우들이 연기한 목소리로 노래했고 디지털 처리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홍백가합전의 영상미 넘치는 방송구성에도 영향을 준다.

마무리를 하자면 홍백가합전이라는 프로는 일본인들의 마음의 반영이 된 시대 흐름을 잘 포착한 기획이 방송의 특징을 만들어왔고 중요한 일본예능 현상의 하나였던 것이다. 홍백가합전은 그저 한편의 노래 시합 프로가 아아니라 의미가 새롭게 길어올려지는 문화 현상으로, 아이돌 이해에도 시대상의 특징과 함께 알려주는 상징성이 있다. 아이돌 이해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거가 된다. 이 글에서는 요약아니마 시대상의 흐름을 정리해보았다. 참고가 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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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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