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읽고 이차문헌 읽는 것에 대한 생각

철학적인 감각이 길러지고 자신의 요령을 체현한 경우 이차문헌만 읽어도 어떤 체계인지, 원전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가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네요. 저 같은 경우 콰인이나 사르트르와 같은 철학자들이 그러했구요. 이분들에 대해 논의하는 분들의 입장에 따라 혹평을 하더라도 이분들의 본의를 안봐도 알 정도는 되서 확인해보고 맞으면 철학적 자신감이 이어지곤 했네요. 전 혹평보다는 구명적인 관점에서 긍정하고 싶은 학자들이었네요. 이분들과 입장이 같으면 유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존경과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기도 하죠. 대부분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시는 놀라운 분들이라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죠.

논의가 보다 더 고도화되고 널리 논의된 이차문헌이 부족한 철학자의 경우에는 직접 읽어봐야 하기도 하죠. 원전을요. 그러나 원전을 사정상 못읽더라도 정확하게 기조나마 알 수 있다면 못하는 철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원전, 이차문헌 관련한 실천이 규범과 연관시켜지는 것은 2005년 즈음이 상징화되는 시기의 사회 분위기 같습니다. 매체에서 사람들의 피로감을 높히는 체제가 전면화되기 시작한 즈음으로 보는데요. 철학 분야뿐아닌 사회 각분야에서 한 국가에서 상식적으로는 없어야 할 일들이 있게 되다보니 철학자분들도 이런 변화를 우려하셨는데요. 이차문헌이라는 것이 지닌 내포가 원전과 다른 소리한다는 의미도 있는만큼 원전에 대한 강조를 하는 사소한 교육방침이 유난히 돌출되는 경우도 있었네요. 그러한 논증을 읽다보면 이차문헌은 정말 쓸모없나?와 같은 고민도 초반에는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철학을 잘하려면 원전도 읽고 이차문헌도 읽어야하네요. 이차문헌의 효용은 초견상 난해한 이론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는 의미도 있고, 공통감으로 철학을 하도록 인도해준다는 의미도 있죠.

철학적인 감각이 길러지면 사실 다 추론을 미리 하는게 정확도가 높아져서 일단 신뢰할만한 같은 입장의 이차문헌만 봐도 틀리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기조 정도만 정리해놔도 원전을 보면 자기가 한 것과 딱 맞는게 확인되면 단련도 되고 자긍심도 얻어지게 되네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원전을 읽되 이차문헌만으로도 어떤 사상일지 추론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원전우선성에 대한 규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철학적 공부의 방법이 되는 것 같애요.

수 많은 이차문헌이 서로 다른 말을 하기도 할때 자신은 확고한 조건하에 정확한 분별이 가능하다면 철학에 정말로 소질이 있다는 의미 같습니다.

원전보기전에 자기 생각과 같은 입장의 이차문헌을 보고 사유의 방향성을 얻는 것도 이차문헌을 생략하는 것과 다른 묘미네요. 사유의 방향성이 기존의 안전한 입장에 대한 준수이기도 하지만, 뭔가 특별함을 반추해서 생각해내는 반면교사의 의미도 있죠. 반면교사로만 읽으면 딴소리하게 되기도 하지만, 자기 사유의 특별함을 가꾸는 방법이기도 할 것입니다.

경험많은 철학자분들이 조언해주시듯이 정답보다는 자기 자신의 평소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집중하라는 가르침도 이차문헌을 읽을때 채택해볼만한 조언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철학과에서 배울때는 주관식 문제에 강의에서 나온 정답이 아니면 안된다는 언급도 있던데 이경우에도 자기 자신의 평소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네요. 이 과정에서 자신의 특별한 사유가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원전도 읽고 이차문헌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아주 선명한 글은 아니고 인상만 보였는데 그래도 의미는 있는 글이죠? 주절주절 느낌이지만 해본 생각을 글로 써봤습니다. 부끄럽지만 올려보겠습니다.

Avatar photo
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