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아오고 있다. 무기력하게 현실에 순응하고 삶의 모순을 느껴도 그저 받아들이는 처지로 살아가기도 한다. 권위있는 사람의 말이 어딘가 이상해도 순간의 감각이라고 판단하고 따라갈뿐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인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전우주의 주인이 되는 학문이라고 할때 우리는 인생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조금은 고리타분해보여도, 철학이 일상인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삶이고 이에 대한 감각이다. 이제는 누구나 철학이 생활에 주는 영향에 대해 극명하게 거부하지 않는다. 그런만큼 적극적으로 철학을 접하고 배우고 갈고닦는다면 수동적으로 살아오는 인생이 아닌 적극적으로 자기주도의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여정을 손쉽게 시작해서 먼 길을 걸어도 지치지 않게 하려면 철학자들이 읽은 책을 참고해서 지성적인 능력을 함양하는 길이다. 철학자들은 책과 씨름하는 사람들이고 생각의 전문가이며 글을 잘쓰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입장을 고려한다면 철학자들이 해둔 생각과 읽은 책들의 궤적은 그저 비오면 지워지는 자국이 아니라, 오랜 기간 낙숫물이 바닥에 뚫은 구멍처럼 숙성되고 강력한 힘을 깨닫게 하는 그런 자연의 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인 서평을 쉽게 접하기도 애매할 뿐아니라 연구논문 형식으로 된 서평은 지불해야하고 산재해있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서점에 가면 철학자들이 저술한 서평집이 몇권 있겠으나 찾기가 애매하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책 박이문 교수님의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책은 이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해줄 양서 서평서다.
우선 실린 책들의 면면이 다른 책에서 안다룬 책들이고, 아주 희귀하기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저자와 저서라고 하는 품목들로 채워져 있으면서도, 읽어보지 않고 이차문헌만 읽고 그냥 건너뛰기도 한 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좋다. 이차문헌에서 생략적으로 보여주느라 이차적인 담론이 편견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직접 지시한게 아니신데도 독자들이 읽어가면서 저절로 일차문헌의 내용에서 놓치고 있던 구절도 잘 보여주실 뿐아니라, 오랜기간 공부하시고 연구하신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분석적인 필치로 소개하는 책의 면면을 아주 친절하게 조명해주셔서 좋다. 그리고 분량도 적당해서 책의 특징과 개념적 특성을 잘 알게 해두신 것과 동시에 부담없이 읽어볼 수 있게 저술되어 있어서 좋다.
안티고네와 같은 고전부터, 랭보처럼 전공자들은 잘 알지만 일반인들은 잘 안읽어봤을 유명 저자의 책, 박희진의 시집, 정재서의 신화집, 에를링어의 동화, 마이어의 생물학서, 에코와 마르티니의 대담집, 환경문제에 대한 호지의 책, 정수복의 한국문화비평, 이숙의의 일대기 책, 정화열의 몸에 대한 정치서, 데리다의 해체론에 대한 교수님의 비판, 모노의 책, 데이비스의 과학과 신에 대한 책 등등… 때로는 잘 알려진 책들을, 때로는 학구적이어야 접해볼 귀한 책들을 서평해두신 책이다.
박이문 교수님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자시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급진적이지 않으시고 애정적이시다. 그렇다고 노철학자의 태도로 학생들을 비난하지도 않으시고 인간적인 면모를 남긴 학자들의 저서에 공감하시고, 과학의 순기능에 찬성하신다. 데리다처럼 남의 사상을 해체하는데 정교함을 발휘하는 철학자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비판하시고, 과학이나 신에 대해서도 논쟁을 일으키지 않는 지성적인 배려도 하신다.
철학 교육이 고교이하 학생들에게도 실행되고 독서의 중요성이 널리 공감되는 시대다. 책읽기는 의미해석 활동이다.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실용성이 있는 정보를 지혜롭게 소개한 책은 찾기가 드문데,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모두 한번에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미 읽어본 사람이 전해주는 소개를 참고하면서 축적한 정보를 감사히 받아 활용한다면 그 독서는 아주 의미 깊고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해줄 것이다.
독서가 외면적으로는 해방과 인도의 논리라면, 내면적으로는 삶의 수면에서 일깨워 성숙한 심연의 눈을 뜨도록 해준다는 저자의 서두 언급이 책 전체를 흐르면서 지성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책을 집필할 당시의 심리적, 문화적 상황이 지금과 달라지더라도 철학이 최소한도로 지속하는 진리의 혜안이 담긴 책이다. 철학자가 쓴 책들이 궁금하다면 구해서 보시길 권한다. 골치아픈 전문서 위주기보다 일상인들도 학구적인 태도로 임하면 읽고나서 인생과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책들이 선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