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이문 교수님은 미학과 예술철학의 구분에 있어서 독특한 분류를 제안하신다. 그 둘을 서로 다른 체계로 보시면서도, 서로 다름을 종적 차이가 아니라 유와 종의 분류성으로 다르다고 하시는 것 같다. 결국 상위적으로 올라가면 서로가 종합되는 관계적 속성을 가진다고 하시는 것 같다. 내 생각은 이 분류법이 탁견이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흔히 보이는 주장은 미학과 예술철학이 다르다는 것인데, 교수님은 이 입장의 기조를 유지하시면서도 서로 공통점도 있음을 남겨두시는 분류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학이 다루는 미라는 것이 단순히 협소한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인도되고, 체계분류의 공통점도 시사한다.
분류의 핵심은 미학의 아래에 예술철학과 예술학을 두신 것이다. 이는 미를 연구하는 포괄적 학문으로서 미학이 있고, 그 아래에 경험과학으로서의 예술학과, 개념들의 분석을 추구하는 예술철학으로 분화된다는 설명이다.
돌려 말해보자면, 미학은 <아름다운 것>을 다루는 학문이고, 예술철학은 <아름다운 것> 또한 다루는 학문이라면, 둘다 미학적이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미를 한정적으로 다루는 미학이나 철학적으로 다루는 예술철학이나 그 적용대상은 <미의 관련성> 하에 예술의 현상으로 소급된다는 점에서 서로 관계적인 분야라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다. 미 자체는 철학에 의존적이 아니지만, 미학에는 의존적이므로, 그둘의 관계는 유와 종의 관계다. 이때의 기준점은 <미와의 관련성>으로, 예술철학을 철학일반으로 보지 않고 <미의 이론>을 추구하는 철학이라고 볼 때, 예술철학은 미학이라는 유의 종적 개념이 된다. 특히나 예술학과의 관련성에서 본다면, 예술철학과의 지향점이 공통된 것이 <미의 현상>이므로, 그 둘은 미학의 종적 개념으로 분류된다.
더 나아가 비미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예술철학은 개념적 가치발견을 지향하는데, 아름다움 그 자체 이외의 가치들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예술가의 창조성이나 비평가의 해석 같은 것의 지향점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화라는 점에서, 자기발견 같은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삶의 의미적 발견으로서의 <대상적/파생적 미> (진선미의 한 국면으로서의 미)는 예술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예술철학은 미를 다루고 있는 것이 분명해진다.
철학에 비해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예술 현상을 다루는 예술학도 결국 예술작품이라는 다면적인 <미의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미적 현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미가 되고, 이는 예술학 또한 미학의 한 부분임을 말해준다.
희곡에서 발견되는 골계미, 건축물에서 찾아지는 균형미, 무용에서 찾아지는 아름다운 동작들, 조각에서 찾아지는 조형미, 추상회화에서 찾아지는 색채미 등등, 예술이 <미의 현상>이므로 이와 관련된 모든 이론은 미학과 관련이 크다.
2. 교수님은 예술학과 예술철학이 미학의 종적 개념으로서 미학의 세부분야로 분류되고 <미의 관련성> 하에 공통됨을 시시하시지만, 그 둘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예컨데 <예술학>으로서의 미학과 <예술철학>으로서의 미학의 분류를 하신다.
현저한 차이점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찰의 지향점의 차이다. 예술학은 실증적 접근의 입장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예술철학은 비실증적이 되기도 한다. 사회와 역사, 기술적 조건을 명시하면서 분석하기도 하지만, 조건 자체의 원리적 특성을 물을 수도 있고, 그러한 시도로 행해지는 예술철학은 본질의 규명을 우선한다. 헤겔의 역사/예술철학에서 논의되는 가이스트 개념이나, 하이데거의 자인과 같은 개념은 형이상학적 본질의 추구에서 창안된 개념으로, 그 근원은 경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해명 과정은 논리적이며 본질적이고, 경험적인 실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예술철학적 규명에 역사와 사회의 기술적 조건이 항상 관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예술철학적 미학이 예술학적 미학과 구분될 수 있는 분기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해명이나 규명에 대해 철학이라는 말로 부른다. 좁은 의미로서의 철학은 사물 현상에 대해 직접적, 경험적 고찰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개념적, 본질적 분석을 하는 학문이다. 예술철학은 사변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철학이라는 통칭어의 애매모호함에 원인이 있다. 예술학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철학의 통칭어로 말하기도 하고, 예술사학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좁은 뜻으로서의 철학은 본질적인 구분점이 있기에, 예술학에서의 직접적, 경험적, 실증적 고찰에 비해 특기할만한 것이 있다.
철학은 다른 학문들이 다루는 직접적인 대상을 다루기보다, 그 학문의 가능성을 다루는 메타학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과학, 종교, 정치, 문화, 사회, 역사, 체육을 아우르는 학문들이 성립한다면, 예술도 성립할 것이고, 예술철학은 예술에 대한 메타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한다. 우리는 예술 이론에 대해 인지력을 보여준다고 말하는데, 예술학도 사물 현상에 대한 인지력을 보여주고 있고, 예술철학도 그러하지만, 본질적인 차이점은 직접적이냐 기능적이냐, 경험적이냐, 논리적이냐의 구분에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철학은 예술이라는 분야의 개념들을 기능적, 논리적 차원에서 분석한다. 역사적, 문화적 조건을 도입하는 단토 역시, 브릴로 박스에 대한 감상의 서술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예술에 관련된 본질적 개념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시도한 것이므로 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3. 분석미학적 관점에서 현저한 것이 언어에 대한 분석이다. 이것이 메타적이 되지만, 언어에 대한 분석은 개념에 대한 분석이라는 의미다. 이는 대륙미학에서도 시도되는 것이다. 즉 헤겔이 가이스트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해명을 제공했다면, 그것은 언어적 분석일 뿐아니라 개념적 분석이다. 이는 개념을 실어나르는 매개체가 언어라는 점에서, 예술철학이 언어분석의 본질적 해명이라는 것이 이해된다.
그래서 예술학에서 아무런 정의 없이 쓰이거나 채택적으로 쓰이는 개념조차도 예술철학에서는 심도 있는 분석을 하는 것이다. 해석, 형식, 창조성, 천재, 자율성, 표현, 재현, 허구, 정감, 회화, 소설, 비유, 평가, 감상 등등의 언어 또는 개념에 대한 주목에 이어 무수한 개념들이 해명되고 분석되는 것이 예술철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심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정리도 물론이려니와, 그것들이 본원적으로 무엇인지, 예술 현상에서 발견되는 이들 개념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식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예술철학으로서의 미학이 지닌 현저한 특징이다.
4. 예술학이나 예술철학은 똑같이 예술작품의 해석을 전제한다. 해석하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감상이나 평가에 열려있다. 미학은 의미체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 작업이라는 것을 예술학과 공통적인 지향점으로 갖는다. 의미체에 대한 해석 작업이며, 이들에게서 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예술철학으로서의 미학은 특별히 본질적, 기능적, 논리적 차원에서 이를 수행하는 특징을 갖는다.
5. 예술학과 예술철학의 종합적인 유 개념인 미학의 목표는 이로써 1) 작품 2) 해석 3) 평가 라는 대상적인 큰틀을 지닌다. 이는 영미미학계에서 예술이론으로 분류하는 예술과 비평, 철학이라는 구분에서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주제로 하는 것들이 일관된 내재적 관계에 따라 마련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항목들이다. 궁극적인 분석의 역할은 예술을 통일된 전체로 파악하는 것으로, 세부적으로는 루페로 회화작품을 고증하듯이, 각각의 세부를 들여다보고 개념적/경험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즉 미의 현상이 어떻게 되는지, 개념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피고, 사용이 되어진 현상 배후의 원리를 밝혀보는 것이 학문으로서의 미학이라면, 예술철학은 대상에 대한 원리 발견에 다름아닌 것이라고 결론이 나온다.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