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실재하는가?

신은 실재할까요? 신앙자이신 분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고 비신앙자들은 아니라고 하거나 알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있고 우리들의 실천에 의해 체험된다.”

마음 속에 임재하신다는 것은 물리적, 육체적으로 관찰되지 않더라도 실재한다고 할 수 있는 한 전제 조건 같습니다. 우리들 마음은 내면적인 것이라 눈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임재하신다면 그것을 실재한다고 할 수 있겠죠. 타인이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으나 우리들 마음과 내면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체험 대상입니다. 이 내면의 임재하심을 우리는 대화나 봉사활동과 같은 실천으로 은혜로서 체험하게 되고 이러한 외적인 실천에 의해 전도가 되고 신의 존재가 실재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에는 언제나 신의 실존이 투사될 수 있습니다. 꽃 한송이를 봐도, 샤론의 꽃 예수를 생각할 수도 있고 거칠은 할머니의 손등을 봐도 우리는 신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삶의 실천을 되돌아봅니다.

신앙자가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 실재한다는 것을 존중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 육체적 실재는 믿지 않더라도, 각자의 세계관에 의해 마음 속에 실재한다고 하는 것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종교 체험과 신 존재에 대한 믿음의 두 전제 근거는 “마음 속에 임재하심”이라는 조건과 “실천에 의해 체험된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마음으로부터 느끼고 타인의 마음으로 전도되는 것도 신이 마음 속에 임재하신다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이로부터 존재한다, 아니다, 알 수 없다는 것도 세계관의 하나로 존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마음이 어떤지 모른다면 불가지론이고, 존재한다면 자신의 마음의 직접적인 체험이며 아니라는 것은 이둘 중 하나도 아닌 것 이렇게요.

사도 바울은 일행이 경험하지 못한 환상을 보고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듯이 마음 속에 임재하시는 체험은 특별합니다. 환상은 환각이 아니고,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어떻게 그렇게 신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오는 것을 소망하는지는 마음 속에 임재하신 체험에 의해서라고 봅니다.

전 비신앙자지만 마음 속에 임재하심이라는 현상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살펴보려는 역사적 예수라는 것도 제 마음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겠죠. 이렇게 대략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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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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