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 코오지 선생님의 사진론 저서를 다시 꺼내들고 읽고 있다. 일본어 철학서는 한국내 용어와 호환되는 용어가 많아서 이해가 쉬운데 표현력이 좋은 학자들은 일본내에서만 쓰이는 용어를 잘 쓰셔서 사전찾기가 애매해서 안보다가 다시 살펴보았다. 내용외적으로 4년은 묵은 발음읽기 기억이 된다. 안찾아본 것은 찾아봐야 되서 에세이 한편 정도만 완독했는데 이제부터 재차 읽으면서 찾아볼건 찾아봐야겠다.
첫번째 에세이가 사진의 가능성을 묻는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식별의 문제로서 사실적이지만 “사진에서 무엇이 가능한가”라고 물으면 가능성의 문제로서 무력감의 극복을 하게 한다. 아무것도 못할거라는 무력감을 극복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매체가 사진은 아니다. 표현적으로 리얼리즘에 바탕하기 때문에 사진가가 마음만 먹으면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무력감의 극복으로 서두를 시작하시면서 가능성의 무한함을 말씀하셔도, 논지가 진행될수록 조건을 명시하신다.
사진은 작가의 세계관, 사진이라는 표현활동의 신체성이라고 하신다. 세계를 향한 몸짓이라고도 하시는데 작가의 세계관이 그의 신체에 내재하는 것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예로 드신 사진이 AP 사진가의 보도사진이다. 노상에서 베트남 군인 관료가 피스톨로 즉결처형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몇장의 연속사진이다.
보도사진이라 사실 전달, 보도의 성격을 띠었으나 사진인만큼 어떤 의미성을 함축한다. 죽음에 대해 보도한 사실전달의 이미지들로, 리얼리즘적인 표현성이 주는 함축이 있다.
그는 죽음도 다루는 매체로 사진의 특성이 죽음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희성도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견지에서 “죽음의 제로화”를 말한다. 적나라하게 평소에 못보던 사진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작품 활동가의 자유지만, 죽음 자체가 지닌 깊은 의미보다는 이미지적인 외관을 목격할 때 주어지는 희열 같은 것은 작가의 신체성이자 관객의 신체성으로 보인다.
이는 톨스토이가 예술의 기능이 오락이 아니라 어떤 깊은 의미를 지닌 참살이 기여라는 것과 흡사해보인다. 이는 제한적이 아니라 리얼리즘적인 사실적 묘사가 특징인 사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생각이다. 두번째 에세이에서는 작가가 찍은 사진에서 묘사된 장면들을 제시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사진가들의 신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드러내주신다. 예컨데 비루하고 뭔가 볼품없는 복색을 입었더라도,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몸을 맞대고 추위에 저항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면 사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입장이시다. 이는 상식적이지만 깊은 형이상학적 의미도 지닌다. 이를 구체화하시는 것이 지금 읽는 책의 서두 두편의 에세이들이다.
보통 사진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예술계의 복잡다단한 작품 제작 과정이나 수용자들의 자유 같은게 허용되도록 논구가 되는데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적나라한 묘사가 가능한게 사실이라 제한을 가하기도 한다. 예컨데 메이플소프의 인생사나 세계관이 인정된다고 해도, 법적 공방까지 가고 소녀에게도 상처처럼 된 작품에 대해서는 논란거리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저자의 관점대로 이해한다면 평가가 가능해보인다.
언어든 영상이든 표현 활동이라면 표현자의 세계를 향한 신체성이라는 것은 평소에 가져야 할 심성적인 것도 시사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기보다는 나름의 의미를 찾되 사진적 사실주의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의미로 이해해본다.
이 글에서는 형이상학적인 함축을 개념화해서 보이지는 않았는데 의미는 있을 것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생각해볼만한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