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로크와 버클리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개념인 물리적 대상(material object)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물리적 대상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인정하는지의 차이에 의해 로크를 표상적 실재론자로, 버클리를 주관적 관념론자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 대상이라는 어귀는 실재와 관념의 상호작용에서 유래한 번역어다. 나는 이 번역어가 이 두 철학자의 모국어인 영어로 기술되면 중의적이라는데 주목한다. material이라는 수식어와 object라는 피수식어는 그저 선택된 우연적 단어가 아니라 서로 각각의 분명한 의미의 정의와 쓰임을 갖는다. 이에 대해 논해보겠다.
우선 논의의 흐름에서 앞서는 로크에 대해서 논해보자. 로크는 물리적 대상이라는 개념을 연합주의적인 관점에서 도입한다. 그는 일반 관념에 대해 논의하면서 사람은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언급한다. 의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유하는 존재인데 이 사유의 목적(object)은 이해이고 이해는 대상(object)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이 대목에서 출현하는 대상, 목적이라는 의미의 중의적 사용은 특수적이다. 지각가능한 외부 세계의 대상이기도 하고 지각된 지각 내용을 가리키기도 한다. 로크는 이어 대상은 지각가능한 속성을 가지는데 대상이 질료(material)로서 주어져 있고 각자의 서판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림 재료(material)을 운용하듯이 사유의 내용을 채운다고 한다. 이 때 질료/재료는 지식의 근거라고 한다. 즉 관념의 원천이 되는 것으로 물리적 대상처럼 수식하기도 하고 지각 내용처럼 채워지는 관념의 질료처럼 수식하기도 한다. 관념의 원천인 경우 감관에 놓여진 <대상>을 뜻하기도 하고 관념의 질료라고 할 때는 감관이 지각한 마음에 채워지는 <지각 내용>을 뜻할 때도 있다. 전자의 경우 물리적 대상의 지각이며 후자의 경우 관념의 재지각이기도 하다.
질료적/재료적(material)이라는 수식어가 수식하는 피수식어 대상/목적/객관(object)도 중의적이다. 대상을 뜻하기도 하고 사유의 목적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는 서술 관계에 따라 한 단어로 이들 의미가 모두 아우러지는 영어에 특정화된 용법 같은데 한국어로는 각각 구분되는 다른 단어로 되다보니 “물리적 대상”처럼만 이해되는 경향이 조금 있다. 각각의 의미를 한번에 아우르는 논증 방법을 고안해보자면 한 단어로는 안되는 것 같고 서술 과정에서 복합성을 드러내면 어떨지. 번역의 예를 들자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사유의 목적은 이해이고 이해는 대상을 갖는다.” 여기서 앞의 목적과 대상이 똑같이 object라고 표기된다. 또는 객관(objectivity)처럼 읽어서 더 부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사유의 목적은 이해이고 이해는 대상을 갖는다. 이해의 물리적 대상을 사유하는 것이 객관의 원천이다” 이런 식으로. 제일 후자의 경우 로크가 관념을 상정해도 이해의 객관적 기준이 마련된다는데 의의가 있다. 즉
material → 사유의 원천이자 질료, 내용
object → 사유의 대상이자 객관, 목적
이 둘에서 어떤 항목에 구심점을 두는지에 따라 외부 세계의 물리적 대상을 지각한 것인가, 관념을 재지각한 것인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 예컨데 object를 목적으로 읽으면 관념의 재지각처럼 된다. 물리적 대상으로 볼 수도 있고. 어느쪽이든 object의 용법에 객관이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둘다 객관적임을 로크는 전제하는 것 같다.
버클리는 이에 대해 어떤 의미로 채택하는가? 내 생각에 그가 물질적 실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실체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주어진 대상에 대한 틀린 지각 내용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그가 외부 세계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주어진 대상(material object)를 부정했다는 것인데 이 주어진 대상을 과학으로 본 것 같다. (그래서 시각에 대한 저서나 후기저서에서 미적분 등을 공격한다) 그가 물질적 실체로서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고 기독교 신앙은 정신적인 것을 실체로 보는 것으로 이에 대비되는 과학적 세계관을 주어진 대상에 대한 답습으로 보고 이 후자를 비판하기 위해 주어진 대상(material object)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클리도 로크처럼 지각 내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로크는 경험적 지식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인정하는데 반해, 버클리는 오로지 정신적이고 순수하게 관념적인 지식만 객관적인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로크는 표상적 실재론자인데 반해 버클리는 주관적 관념론자다.
문장을 길게 써서 이해가 편하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해는 되실 것이다. 로크와 버클리 저서의 매우 일부분만 읽고 써서 개념적으로 잘 해뒀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이해의 내용은 보였다.
20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