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김상욱 저)

물리학은 차가운 학문일까? 세상을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어 사실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기관, 조직, 세포, 분자, 원자, 쿼크 등으로 잘게 쪼개어 연구할때 감성보다는 냉철한 차가움도 느껴진다. 마치 우주에서 끈에 의지에서 우주선을 정비하는 우주인들이 우주복을 안입고 나가면 얼어 죽듯이 물리학의 연구 대상은 차가운 특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물리학 박사 김상욱님이 저술하신 “떨림과 울림”을 읽으면 마음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작은 떨림과 울림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진동이 가능한 떨림이 있고 이를 감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울림도 있을 것이다. 한낱 과학책에 이런 오바와 같은 감상이 비할 수 있으려나 싶지만 팩트만 나열된 책에 비해 물리학의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 범상치 않은 책이다.

공식은 최소한도로 보여지고 있고 개념 중심으로 해설한다. 약간의 인문학적인 요소도 추가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조곤조곤함도 느껴진다.

해설 주제와 난이도는 고교시절에 배우는 주제인데 대학에 들어가 배우는 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핵심을 잘 풀어서 해설하기에 이해의 큰그림을 얻는데 최적인 것 같다. 이시대의 휴머니스트 지식 소매상인 유시민 작가님이 저자에게 물리학을 배웠다면 조금 더 다정하게 배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실재로 이해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철학이든 과학이든 처음 대면하면, 한달음에 철학자가 될 것만 같거나 과학자가 될 것만 같은 느낌으로 충만할 때가 있다. 경탄과 놀라움으로 떨리는 기분이다. 각자가 공감해서 떨리고 떨려서 마음 속 깊숙한 곳부터 어떤 명징한 울림을 경험하면 물리학도 배우고 싶은 의지가 생성될까? 사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확 바뀌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의지가 생성되는 경험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험이 누구에게라도 전이된다면 그것은 떨림과 울림으로 연결된 무엇이다. 바로 그 무엇을 저자 김상욱님은 의도한 것 같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나름대로 아는 바가 연관되어 가치읽는 중 글쓸때 반영이 되었다. 그러나 고교 시절의 지식으로도 사실적인 기술이 되는 제1부에 비해 2, 3, 4부는 윤리적인 함축을 주목해서 썼는데 나름대로 포착한 주제성이 있어서 잘 읽은 시간이었다. 저자의 기술 방식처럼 물리학의 팩트적 기술을 조금 비틀어 정서적 감응도 느껴지게 한다면 좋을텐데 일단은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글을 써봤다.

물리학처럼 냉철하고 차가운 분석력으로 진행되는 분야에서도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성취를 이끌어낸 과학자들의 평소 인품도 느껴진다. 엑스선의 발견이나 인공지능의 개발 등등의 과학적 사실에 대해 냉철하고 차가운 면모 뿐아니라 인류 전체를 풍요롭게 하려는 세상에 대한 의지도 느껴진다. 좋은 책 같다.

본다는 것
물체는 빛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방에서 시간이 지나면 물체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미량의 빛을 지각할 수 있어서다. 물체에 빛이 반사되면 표면의 분자에 의해 일부 흡수되거나 일부 굴절되는 것이다. 이 빛이 시각기관을 통해 뇌를 거쳐 사물의 모습과 색상으로 나타난다. 동물마다 지각할 수 있는 시각적 특성이 다르다. 어떤 동물은 흑백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은 가시광 영역의 빛을 지각하는데 총천연색으로 본다. 사람마다 공감각을 갖는 것은 빛이 있어서이고, 빛이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서로를 알아보고 떨고, 울림을 받고 사귀고 아웅다웅 다투고 그런다. 떨림이란 존재하는 것의 특성이자 공명의 현상으로 함께 울림을 느끼는 무엇이다.

시간과 공간
빅뱅이 일어났을때 시공간이 열렸다. 그전에는 시간이 존재했을까? 공간만이 나타난게 아닐까? 내 생각은 시간은 유비 개념이고, 허수와 같이 실재로 대응시키기가 어려운 대상이지만 회로 원리 이해와 측정에 쓰이듯이, 고안된 개념으로 생각한다. 시간 그자체가 물질이기보다, 물질이 일정한 측정 단위로 관찰될때 그 물질의 변화량을 계산할때 유비적으로 추상된 대상으로, 모든 생성과 소멸에 관여하는 개념의 일종이다. 그러하다면 물질이 아니므로 공간이 생성될 당시보다 전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개념으로 대응되지만, 실재하는 물질, 존재하는 물질, 소멸하는 물질의 이해에 절대적인 때로는 상대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나이든 고목이나, 열을 가한 계란후라이가 되는 과정은 시공간적이다. 고목은 거대하게 자라면서 공간을 토대로 존재하고, 계란후라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태 변화를 한다. 이 변화량을 시간이라는 개념 또는 실재적 상관물로서 우리에게 현전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 그자체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시간이다.

빛도 빅뱅에 의해 생성되었을까? 빛이 빅뱅 전에는 없던 암흑 상태였다면 그때 인간이 존재한다고 해도 암흑 상태가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고, 특히나 원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상상 불가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여러 물리학자들은 빅뱅 이전의 세계도 아이디어로 내놓는데 다중우주론이 그 예다. 한 버전에 의하면 우주는 얇은 막으로 되어있고 이 막들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면서 충돌하면 빅뱅이라는 이론도 내놓은 물리학자가 있다. (콜로라도 대학 소속인가 그랬다) 여기에는 다중우주론이나 다차원 이론과 같은 끈이론의 성과와, 차원 이동 같은 이론물리의 사고실험이 반영된 이론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이 시공간의 기원과 형성, 소멸과 생성이다. 시간과 공간은 내 생각에 실재에 대한 기원의 문제다.

말하자면 공간은 절대적이고, 시간은 측정 대상에 유비적이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했다는 시간이 빨라진다는 것은 절대 개념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A가 놓인 조건에 따라 A의 시간은 빨리 가고, B가 놓인 조건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은 측정 가능성을 위해 파라메터의 일부분은 측정 전에는 절대적으로는 지각하지 못하는 일면이 있다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 개념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의 생성과 소멸, 운동의 과정을 안다. 원초적인 분자의 진동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도 Hz 물리량에 시간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측정 전에는 몰라도 훌륭한 물리량을 우리는 안다. 이는 시공간이 인지 체계의 기본 조건이라서다. 시간이 파라메터로 들어간 연산은 시간에 상대적이다. 상대성이론도 이런 의미일까?

세계의 존재 이유를 안다는 것
측정이 불가능하거나 상정이 어려운 것은 인식이 불가능하다. 존재가 어떻게 존재했는지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사람의 일대기에 비해 아주 긴 138억년전의 빅뱅을 측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측정 기기의 발달이 된 지금의 관측도, 보조가설 중에 하나가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세계의 존재 이유를 정확하게 누구나, 과학계나 종교계나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하나의 인식 지표로서 기준을 세우고 지어내지 않고 관측값의 물리량으로 예측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누군가 연구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반론을 제시한다든가, 다른 방정식을 고안한다면 하나의 관점은 된다. 광학체계도 해밀토니안 광학에 의해 이룩된 공식들은 또다른 지평을 열었다. 라마누잔의 기괴한 공식들도 효용이 있게 연구되고 있다. 그러하다면 측정 가능성에 기준을 세우고 인식 지표로 하는 활동은 무의미하지 않다. 초기 조건과 법칙은 자유로운 과학자들의 사고 실험이 필요하다. 공식으로 이어주는 활동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허수라는 것은 현실에 유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관찰 과정과 결과 기술에 쓰이는 물리량 연산과 표기에 보탬을 준다. 세계의 존재 이유를 알아가려는 빅뱅 이론에서 현실에 유비하기가 쉽지 않은, 그러나 쓸모있던 기존의 체계로부터 경험적으로 참인 기준에 근거해서 이론이 창출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연구라고 할 것이다. 허수가 회로 구성에 도움을 주듯이 빅뱅 이론에서도 흡사한 물리량을 토대로 연산을 하는게 고안된다면, 이론은 그러면서 발전이 이루어진다.

세계 존재의 근원 원자
세상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쿼크, 렙톤 등으로 더 쪼개지지만, 원자는 물질의 특성을 결정하는 최소 근거다. 원자가 원소로서 가지고 있는 화학적인 특성으로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들이 결합하면 분자가 되고 분자가 결합하면 세포가 되고 세포가 결합하면 조직이 되고 조직이 결합하면 사물이 된다. 심지어 사람도 원자로 구성된 것이다. 부부의 몸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정자와 난자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배아와 태아, 아기와 어린이, 청소년과 어른, 노인 모두 그렇다. 사람의 경우 특별히 단백질이라는 아주 복잡한 분자량의 물질들이 이렇게 저렇게 결합하면서 보다 더 복잡한 인체를 구성하고 운용하게 한다. 사람은 죽지만, 썩더라도 원소로 남는다.

원소들은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것과 실험실에서 실험에 의해 그 존재가 생성되어 알려지는 것이 있다. 생성되더라도 극히 미량이고 측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원소로서 인정받는다. 그래서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원소보다 논의가 더 있어야겠으나, 주기율표에 배치되는 원소라면 그 의의가 크다.

생명체나 무생물체나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원자들의 활동에 의해 생성, 운동, 변화,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숨을 쉬고 산소가 피에 녹아 여러 기관에 전달되고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이 되고 세포들이 활동하면서 생각도 진행되고 행동으로도 옮겨진다.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세사람도, 휠체어에 앉아 연구를 거듭한 호킹 박사도, 이 글을 쓰는 나도 이러한 원자의 운동으로 이렇게 활동하고 있을 수 있었다. 멋진 제임스딘도 사실 원자다!! (?)

원소의 성질을 정의하는 것은 전자다
수소는 단일 물질 같으나 아니다. 전자 구성에 따라 수소, 중수소, 삼중수소로 나누어진다. 쌍둥이도 세포 작용에 의해 단백질이 붙고 풀리고 하는 현상에 의해 그 모양과 기능이 달라져서 세포 수준에서 보면 다르기도 하다. 원소들도 서로 다르다. 이는 양성자와 전자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로부터 유래하는 화학적 특성이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전자들은 다 똑같다. 그러나 원소마다 전자의 수가 다르고, 양성자의 수도 달라서 같은 수의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원자는 같은 특징을 지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자는 매우 빠르게 운동하며 전자각이 있으나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 움직인 순간의 위치는 양자역학적으로 순간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전자 배치에 의해 특징이 다르고, 전자 배치가 유사하면 특징이 흡사해진다. 주기율표에 배치된 원소들이 족과 주기로 배치되는 것도 그러한 원리다.

원자가 구성하는 생명체나 무생물은 완전 같지는 않더라도 그 기저를 보면 전자의 원리에 의해 공통점을 갖는다. 기본 입자는 같고, 그 조합이 다르다. 그래서 기본 입자를 알면 공통점을 알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이내 공통된 믿음에 도달한다.

미토콘드리아 / 존재의 차이, 차이의 크기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답은 “세포가 먼저다” 세포는 생명활동의 근원이다.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기도 하고 세포막을 거쳐서 품질의 입출입도 하기도 하고 분열이나 분화와 변이를 거치면서 생명 활동의 중심에 있게 된다. 세포 활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소기관이다. 미토콘드리아 덕분에 세포 활동이 가능하다. 미토콘드리아가 파괴되면 세포도 소멸한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은 모계유전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원형이 여성이라는 가설도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에 그 유래가 있다.

과학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가? 포괄적인 정의는 존재하지만, 관점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전기자동차로 비용을 절감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과학의 혜택에 기뻐할 것이고 가습기 청소하는 약품에 중독된 가족들은 싫어할 것이다. 과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 지금과 같은 번영을 이루었다. 여기에 물리학이 가져다 준 것은 상당부분 혜택이다. 전기자동차도 그렇고 컴퓨터가 있으니 나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바라보는 관점이 관건인데 여기에는 하나의 획일적 강요는 없다. 갈릴레오 시대에서도 획일적인 기존의 틀린 관습이 과학자를 억제했다. 이 경우에는 과학자들의 신념이 이루어낸 사실에 다들 감동한다. 요즘 시대에도 어린이들은 컴퓨터와 태블릿을 하면서 미래의 꿈을 꾸기도 한다. 기존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가 물리학에 관심을 둔다면 어떤 어른이 될까? 자신의 관점을 그저 관점으로 두는게 아니라 관점을 관점답게 가꾸고 그 관점으로 발견을 이루는 것 이것이 과학이 어린이에게 할 수 있는 축복이자 혜택 같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어린이가 세례를 받고 공동체에서 자라나듯이 물리학을 접한 어린이가 학위를 받고 공동체에서 자라난다면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4부에서 저자는 유발 하라리를 예로 들면서 인류가 만들어낸 상상이나 개념에 대한 해석을 한다.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은 눈에 보이는 실체는 아니고 개념에다가 현실적인 현상 내용을 대응시킨 것이다. 그냥 대응은 아니고, 인류와 공동체가 지속되어야 하는 최소한도의 합의다. 이 합의는 과학외적일때 임의적이기도 해서, 국가나 공동체, 성별, 나이, 문화 등등의 파생 개념에 의해 변인이 많다. 그래서 철학과 같은 메타학문을 하는 분들은 과학처럼 일정한 규칙에 논리적, 규칙적 정합성이 강한 분야를 신뢰하고 이로부터 학문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과학도 유명론적인 경우가 있고 (단백질로 아미노산이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프로틴이라고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시체가 여럿이다 실재로. 단백질의 분자생물학적 접합은 경우의 수가 경이로워서 더욱 더 그럴텐데) 여러 변인들이 있다. 그러나 소립자나 미립자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더라도 구축된 과학적 설명체계는 무한한 기술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기존의 컴퓨터로는 수없이 긴 시간이 걸리는 암호해독을 양자컴퓨터로는 짧은 시간 내에 마치는 경이로움이 현대 과학의 한 상징이다.

그러나 물론 응용의 문제라,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타분야에서도 이루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자정작용과 같은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가 4부에서 말한 과학 조작 사건은 과학계가 자정작용으로 통제적 사용원칙의 효력을 실천하는 분야임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 포괄적인 표현으로 기술할때, 개인마다 다른 사용 방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가 어렵기도 하고, 관습화된 언어적 규정 체계를 시험족보 외우듯해서 통과할때의 우려가 있기는 하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변인이 안알려진 이면에 있을 수도 있어서 과학과 철학의 공존이 제일 최선의 체계로 생각이 된다. 철학이 월권이면 소칼처럼 비판하고, 환원주의가 월권이면 비환원주의 철학자가 비판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직관이 가능한 자정작용의 일부 같다. 한 경험영역에서의 이해를 다른 경험영역으로 옮겨와서 이해할때 각 분야에서 맹점이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뚜렷한 공헌을 한 과학자들은 철학자이기도 했다.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

물리학 책이기에 서술 표현들이 물리학의 팩트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떨림과 울림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소립자와 미립자로부터 원자, 분자, 세포, 조직, 유기체 등으로 상태가 한단계 높아짐에도 공통된 진동과 공명이라는 과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감성적으로 감응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물리학적인 지식에 대해 소개를 하는 과정이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문학적으로 접해본 떨림과 울림이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적 관점이기도 하다고 느낄때 감동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진동 주파수가 같게 되면 공명이라는게 푸른빛 공명(?)이 되는데 이로부터 존재의 파괴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울림으로 대체하는 저자의 솜씨가 좋다. 진동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라디오 방송을 연상케 한다. 소개한 쟁점에서 윤리학적인 함축이 이끌어내지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글은 모나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책 전체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전통적으로 물리학이 발전되어온 간략한 과정과, 연구하는 네가지 기본 힘의 예화된 원리에 대한 소개, 물리학 분야에서 있어온 과학적 쟁점들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해설해주는 것이다. 저자가 방송에도 나온다던데 시청을 안해봤지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이정도의 이해 심도와 서술력을 보면 대단한 창조성이 있는 과학자 같은데 책도 대부분 수긍할만하다. 모나지 않게 쟁점을 소개해줘서, 물론 심도있게 들어가면 정체성 정치로도 이어지지만, 도킨스와 같은 밈까지는 아니라는 언급과 같이 급진적이지 않은 서술이 좋다.

나보다 물리학을 훨씬 잘하시는 저자지만 일단 책 전체를 타고 흐르는 특징이 이렇다.

여튼 일독하면서 관련 주제도 찾아보고 공부하는 전거로서 좋은 것 같다. 인간미가 있으신 유시민 작가님이 칭찬을 한 책이라니, 마케팅적으로 보여준 띠지에 나온 말이지만 나도 작가님께 동의한다. 4부에서는 1, 2, 3부에서 해설한 것을 총정리하는 것 같다. 일단 술술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을 나도 이글에서 정리해두었다. 정교한 정리는 아니지만 다들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으며 이만 씁니다.

떨림과 울림 – 교보문고
떨림과 울림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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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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