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의 화와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후한의 황제들은 특정 시기가 되면 단명하고 어린 나이에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어린 나이의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 선제의 부인이었던 황후가 황태후가 되어 섭정을 하였다. 황태후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오라버니나 친인척을 등용했고 이들은 황제가 장성하면 권력을 내주어야 했으나 찬탈 야심이나 황제 단명 등의 이유로 권력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성한 황제는 이런 외척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자신과 친근했던 환관들을 기용해서 외척 세력을 척결하려고 했고 이런 견제와 대결 구도에서 환관들이 우세할 시절과, 외척이 우세할 시절이 나누어진다.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존재가 환관들이었기에 이들을 매우 신뢰했다. 환관과 외척들의 세력다툼은 결국 조정의 불안과 혼란을 조장했고 이로인해 유생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환관들의 부정부패와 전횡에 대해 낙양의 태학생 3만명은 태위 진번과 사예교위 이응 등을 포함한 모임을 결성하여 환관 정치를 비판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환관 세력은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이들이 조정을 비방하고 민심을 동요시킨다는 무고를 한다. 그당시 황제였던 환제는 환관을 절대 신뢰했기에 이 상소를 보고 대노한 환제는 유생과 사대부를 잡아들인다. 이들은 옥에 갇혀 심문을 받았다. 이들의 무고를 진언하는 시도는 환제에게 무시당했으며 심문은 그대로 진행된다.

심문이 진행되자 수백명의 체포된 당인(黨人)들은 입을 모아 화관들의 자제와 친인척의 전횡을 말했고 이를 알아챈 환관들은 이들을 석방한다. 하지만 종신금고형에 처해 다시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게 조치하였다. 이를 제1차 당고의 화라고 하고 이를 후한 말기의 환관들의 발호와 전횡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

환제가 죽고 영제가 황제가 된 이후에 어린 나이였기에 두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고 두태후는 당고된 인사들을 재등용 한다. 대장군 두무와 태위 진번은 환관을 없앨 계획을 세우지만 발각되어 환관의 사인 학살이 재개되었다. 이응, 두밀 등은 죽고 600백여명은 죽거나 귀양갔다. 그들의 친인척도 화를 당했다. 이를 가리켜 제2차 당고의 화라고 하고 환관들의 득세가 만연되는 사건이었다.

184년 지방의 자생종교로 장각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한 농민봉기였던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당인들은 사면되고 복귀한다. 소설 삼국지의 시작은 황건적의 난이 시작될 즈음이다.

영제가 죽으면서 배다른 형제인 변과 협 사이에서 미묘한 권력 다툼의 씨앗이 자란다. 영제는 폐적입서를 추진해서 변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협을 선호했으나 죽음에 이르러 환관 건석에게 협을 후대로 이어지게 할 것을 명하지만, 이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여 형 변이 즉위한다. 이때 환관을 내치려고 하는 대장군 하진 (하태후의 오라버니) 과 교위 원소가 환관을 내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다가 위조된 황태후의 요청을 받은 하진이 궁궐에 들어오자 환관들은 그를 죽인다.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고 한다. 원소는 이에 격분하여 그때까지의 금기를 깨트리고 군사를 궁에 진입시켜 환관들을 소탕한다. 계획의 일부였던 지방군벌들의 소환으로 스스로 환관 일망타진을 하지 않고 해결하려던 하진과 원소의 계책은 결국 동탁이라는 포악한 군벌이 궁을 장악하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소제(변)을 폐위하고 헌제(협)을 옹립한 사건이 터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원소는 동탁의 전횡에 반대하다가 위험을 느끼고 한발 물러난다. 이후 반동탁 연합군의 맹주로 추대되어 한나라 왕조에 충성을 보이지만 연합군은 와해되고 후한의 정세는 지방 군벌들의 군웅할거와 세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소설 삼국지의 시작부분의 역사적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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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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