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파일 더운 날 새벽 어느 집 마당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함께 곡소리가 들려왔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들고 골목길은 어느새 인파로 둘러싸였다.
“어머니ㅡ! 저 죽씁니다!”
돌쇠였다. 돌쇠는 갑자기 일어난 복통을 호소하며 집앞을 나서다 앞마당에서 널부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매우 일그러진 표정으로 정장차림의 옷은 흙먼지가 묻어 휘날린다. 어머니는 들으신지 마셨는지 나와보시지도 않고 인파는 수근대고 있다.
알고보니 돌쇠가 취업한 곳은 천황명죽이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죽집이었다. 어머니께 죽쑤어드린다고 신이 나서 출근하다가 맹장염이 도진 것이다. “어머니ㅡ! 저 죽쑵니다”라는 말이 허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첫 출근날은 대미를 열고 있었다.
“삐보ㅡ삐보ㅡ삐보”
돌쇠의 의식이 저만치 흐려지고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의식을 잃고 4시간이 지났다.
“으으억… 흐으억…”
그날따라 마취과 전문의가 어머니 상을 당해 결석이라 마취제의 농도를 잘못 맞춘지라 마취가 이른 시간에 풀렸다. 의사분들도 당황하고 우왕좌왕 돌쇠는 너무나도 어픈 나머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그렇게 1시간여 염증이 난 맹장을 들어내고 그야말로 팔을 째는 수술에서 장기를 두었던 관운장처럼 진을 다 뺀 돌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니, 첫출근인데 왜 무단결석이야?”
천황명죽 압구정 지점의 지배인이 화를 내며 물었다.
“돌쇠가 쓰러졌다네요”
“아니, 그렇다고 연락을 안하고 있으면 어떡하라는거야. 대타라도 나오게 해야지”
“그래도 저한테는 연락이 왔네요. 지갑에 들은 연락처 메모를 보고 했다고…”
“흠 그래 그렇지. 대타는 현수로 해야지.”
“지배인님 그건 그렇고 언제 한번 문병이라도 가야…”
“그건 너희들 소관이지 난 안갈련다. 첫출근부터 이게 뭐람”
돌쇠의 죽쑤는 실력은 재야에 은거하는 제갈량의 신묘한 지력과도 같이 뛰어난 편이었다. 나름대로 모태 요리사의 기질을 타고난지라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재현할 정도의 실력가였다. 하지만 약점이 있었으니, 2, 3세때부터 모친의 요청으로 관찰받는 중이라 인생이 꼬이기도 하고 보호받기도 하는 혼돈의 양상이었던 것이다.
겨우 죽쑤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취업이 되어 첫출근하는 날에 갑자기 맹장염이 도지다니, 이것은 참으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래도, 취업된게 어딘가.
그렇게 하루가 가고 돌쇠의 친구였던, 돌쇠를 천거한 경희는 나름대로 친구의 안위를 보기 위해 문병을 가기로 했다. 뭘먹으면 안될 것이기에 음식보다는 옷을 사가기로 했다. 평소에 돌쇠가 좋아하던 흑백의 푸바오 의상을 가지고 가서 선물할 생각이었다.
“흠 그녀석 동물학 잘한다던데. 직업은 요리사네”
경희는 쓴웃음을 피식 웃으며 어린이 용품점에서 푸바오 의상을 집어들었다. 사이즈는 투엑스라지였다. 어린이용이라 투엑스라지는 되어야 어른이 입는다.
경희의 발걸음은 종종걸음이 되었다. 야밤에도 면회가 될테지만 빨리 가서 만나고 위로해주고 집에 돌아가 고모부의 밥을 해두어야 해서다. 버스를 타고 달려가 내린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찾는다.
전방으로 50미터 앞에 있는 병원 간판이 보였다.
경희는 300호실에 가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병실에 들어서니 3인용 병실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어느 산적 같은 남성이 누워있고 그앞에는 머리가 산발이 된 여성이 마스카라가 번진 상태로 울고 있었다. 다른 한쪽 구석에는 90세 노인이 닌텐도 DS를 들고 피파 사커 게임을 플레이한다.
맨끝에 있는 병석에 돌쇠가 누워있다. 경희가 흔들어 깨우니 눈을 뜬다.
“으헉! 브론토 사우르스는 없는 공룡이라구~~~!!”
하고 벌떡 눈을 뜨는 돌쇠. 경희가 말한다.
“어이, 이제 정신이 드나? 왠 브론토 사우르스 뭐시기야? 수술은 잘 끝났지?”
“아… 꿈이었네. 리차드 도킨스가 꿈에 나왔는데 브론토 사우르스를 보여주더라고. 이미 없는 공룡으로 판명났는데 이 교수님 참으로 고집이 쎄더군. 창조론자와 거의 대등해”
돌쇠는 꿰멘 부위에 약간의 땡김을 느끼면서 열변을 토했다.
“허허 이사람 왕년에 공룡이름좀 많이 외웠다던데 수술한지 몇시간이라고 또 공룡꿈을 꿔”
경희는 사온 푸바오 의상을 보여주며 돌쇠를 위로했다.
따르르릉. 갑자기 경희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크린에 뜨는 콜러아이디를 보니 고모부 전화였다.
“경희야, 나 배고파 얼른 와서 밥차려주렴”
경희는 의무감으로 알겠다고 응답하고 병실을 나섰다. 돌쇠는 다시 누워 잠을 청하고, 경희가 남은 보호자 수속을 처리한 후로 완전히 병원을 떠난다.
돌쇠의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지라 홀로 두면 몽유병 환자처럼 밖을 쏘다니다가 길을 잃고 파출소에 구해지기 일쑤였다. 돌쇠가 마당에서 나뒹굴때도 그래서 안나와본 것이었다.
5월의 새벽은 아직은 선선하다. 곧 이어 6월이 되면 병원은 에어컨을 켤테고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돌쇠의 어머니는 어떠하실까? 경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일 아침에 전화로 돌쇠 어머니를 수발할 도우미를 부르기로 했다.
동네 어귀의 건물들에 하나둘씩 방불이 켜지고 암흑 속의 불빛으로 여기저기서 도시의 장관을 이룬다. 그렇게 경희는 집으로 들어갔다.
맹장염이 아물고 난 몇개월 후, 돌쇠는 퇴원하여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천황명죽에서는 첫날에 안나온 것을 이유 삼아 해고를 한 상태였다. 경희는 가끔 나와 기타를 쳐주고 다정했던 그때 그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고, 돌쇠는 가끔 복부가 땡기는 아픔을 느꼈다. 그래도 그냥 지내고 그전부터 있었던 가슴의 통증은 그대로였지만, 그냥 참아내고 살아가고, 다시 아픔이 도지는 생활이었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다ㅡ.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여러 만감이 교차하는 돌쇠의 삶이었지만 그럭저럭 버텨온 지난 세월들. 요즘은 돌쇠도 tDCS를 써야 할 정도로 기력이 쇠한다고 누구에게 말하기보다 카네이션 생각을 한다. 이것이 멍청해보인다고 하지만.
오늘 돌쇠는 몸에 남은 통증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스토브를 켜고 씻어둔 쌀을 담아 치킨스톡을 부어 죽을 끓였다. 죽은 보글보글 끓어가고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다. 어머니께 밥을 드리는 것조차도 공포감으로 다가오는 이때, 돌쇠는 특유의 낙천성을 발휘하면서 대처한다. 전산학과 철학을 배운지라 매우 현명하기도 했던 돌쇠는 오늘도 모친을 위해 죽을 쑨다.
다 쑤어진 죽을 그릇에 붓고 모친에게 가져다 드리면서 돌쇠는 되네였다.
“어머니! 저 죽쑵니다”
ㅡ끝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