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품질 기준에 대한 상향조정

글을 쓰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연습이 덜 되었던 시절에는 타인의 글에 대해 지금보다 더 존경의 마음을 어떤 글쓰기 유형이든지 가지고 있었다. 에세이 형식으로 자유롭게 개진하는 글이든, 고도의 논리와 형이상학적인 짜임새를 가진 글이든, 무언가 배우고 익혀서 나의 글쓰기에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신중하게 읽었다.

나름대로 글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그 배경을 생각하는 능력은 있어서, 뭐라고 해설은 금방 안되도 글 구사에 필요한 판단은 무의식의 기저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시절이다.

그때의 기준은 분석철학자처럼 쓰는 것이었는데 최초의 문체는 일상적인 주제처럼 늘 접하고 생각을 코드화한 주제일때 최적이었고, 실존주의나 미학에서 제일 잘 발현이 되던 것 같다. 과학에서는 광학 주제도 몇편 쓰고 전산학 개념도 지금보다 더 장문으로 개념 세부를 채워가는 능력이 발달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인생의 굴레가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라, 비판을 받거나 체현 리사이클이 되면 그때까지 파악해둔 문사들의 글 형태가 그야말로 서큘레이션되면서 조금씩 바뀌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만족하지만, 한창때보다는 인문학적 감성의 세부가 이그러지고 팩트적으로 보이게 써지는 것 같다.

전문가적인 글도 자주 쓰고 익숙해졌는데, 내가 잘하게 되다보니 글의 품질의 기준에 대한 상향조정이 된 상태다. 아무 글이나 배울점을 찾게 되지 않는 약간의 냉철함도 갖추게 되었고 에세이도 요즘은 내 생각이나 의견보다 사실 기술이 많이 들어가면서 재미가 없어지고 세부 서술이 밋밋해지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일단은 생각이 정리되면 학문적인 글이 써지니 만족하고 있다.

철학 교수님들도 가끔 하시는 말씀이, 타인의 글을 보고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평가적으로 읽으라인데, 난 배려적인 것도 일정 부분 추가한 것 같다. 글쓸때 한결 배려적으로 보이게 노력한다. 철학적인 문체라 냉철하게 보여도 무언가 가르쳐드릴때는 배려를 하기도 한다. 신형철 교수님과 같은 마음가짐인데, 그분은 특별히 감성과 정성을 보여주시는 문체고 난 분석적 문체라 조금 다르지만 나도 배려를 하는 정도의 해설적인 능력이 조금 있는 것 같다.

글을 잘 쓰게 되고나니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내 삶의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각 장면마다 상황적인 이해가 깊어지게 된다.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만족도가 상승하다보니 여유롭게 관조해서 쓰는게 된다.

아주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상향조정된 글의 품질 기준은 조금은 겸손하기도 하다. 전보다는 충돌 상황에서 내 생각을 표명하기도 하는데, 그냥 싸우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도덕적 기준을 지키기도 한다.

철학교수님께서도 사유력과 표현력을 인정해주시기도 하셨으니 잘 하는 편인 것 같기는 한데 늘 내 글이 무언가 부족하다거나 기준에 어긋나는게 아닐지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지금까지 해온대로 잘 해내가야겠다. 후달리더라도 기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실행력의 상승과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무엇보다도 인간미를 표현하는 내 문체 내에서의 방법을 터득하면 된다. 지금도 배우는 과정에 있으나, 일정 정도는 이루어내었다. 그러니 늘 발전하고자 하면서 늘 창조력 있는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 이것은 철학을 하는 모든 분들의 숙명이다. 잘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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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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