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으면 좋아하게 되는 쿠와타 형님의 보컬로 듣는 TSUNAMI는 저의 애청곡이기도 했지만 가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죠. 절절하기만 한 가사로만 채워넣지 않아도 품위와 감성의 결이 느껴집니다. 이 노래에서 잔잔하게 노래하는 가사 중에
히토와 다레모 아이모토메테 야미니 사마요우 카모메
소시테 카제 마카세 Oh My destiny
나미다 카레루 마데
라는 구절에서 갈매기가 등장합니다.
갈매기는 바다를 날으는 비행동물이기도 하고 떠돌이 같은 이미지도 있고 시장 부두 앞에서 찌꺼기를 먹는 새로, 자유를 상징하는 사진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다들 아시듯이 말이죠. 싯구의 감성적인 특징은 평소에는 그저 하나의 독립된 사실로 여겨지던 동물의 이미지를 아름다운 애수와 회한의 이미지와 통하게 해두면서 시의 느낌을 독자나 청자도 느끼게 요청하는 무엇입니다. 평소에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TSUNAMI에 나오는 가사를 보면 또 수긍하면서 공감의 감정을 느끼고 나눕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어적인 의미는 청자나 독자에게 그저 공감을 요청하는 요청의 의미라, 때로는 클리셰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의미가 강하지 않네요. 그런 의미에서 amazarashi의 보쿠가 시노오토 오못타노와에서는 아래처럼 노래하네요.
보쿠가 시노오토 오못타노와
우미네코가 산바시데 나이타카라
나미노 마니마니 우칸데 키에루
가코모 츠이반데 톤데유케
이 가사에서는 카모메의 종까지 명시하고 있고 약간의 경멸조의 느낌도 들지만 먹이를 주면서 한가롭게 지내야 하는 어떤 암시가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모메의 종을 명시한다는 것에서 마치 공룡을 아는 것에서 느껴지는 어린이적인 취향과, 한계점, 뭔가 과거에 얽혀있는 한탄을 먹이를 주면서 괭이갈매기에게 다가서고 싶은 심정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과거에 대해 우리는 공감할 수 있고 이를 호소하는 심정이 느껴지는 것이겠죠.
갈매기라고 하든 괭이갈매기라고 하든 그 의미는 독자와 청자들에게 달려있지만 이런 노래 가사에 대해 우리가 반응하고 감성을 느끼는 것은 시어가 기호라서 같습니다.
기호는 해석자와 의미를 이어주는 통로 사이에 있는 매개물로 우리의 체험이나 느낌, 인상, 기분, 태도 등이 뒤섞여 다중적으로 그 의미가 사상되는 언어적 창작물일 것입니다. 작사 또한 기호에 기반하고 있다는데서 뭔가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질때 그 폭발력이 상승합니다. 실재로 보지는 못했으나 함축적으로 무언가가 사람의 인생을 노래한다는게 느껴지는 분야에서 허락된 가사를 듣다보면 각자가 지닌 평소의 생각들, 마주친 체험들, 이에 대해 느꼈던 무의식적인 인상이나 기분, 태도 등이 사상되어 시어의 일반어적인 특성을 결정하네요.
TSUNAMI에서 노래한 갈매기는 따듯한 감성의 소년을 노래하고 amazarashi가 노래한 갈매기는 이러한 일반적인 갈매기 비유가 통하지 않게 된 소년의 비극을 노래하네요. 둘다 흔한 단어라고 보이지만 다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개성으로 그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사가 흔한 단어여도 중요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기호에 의미를 담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암시하면서 청자와 독자에게 공감의 의미를 전달하는 그 테크닉에 있는 것이고, 사잔오루스타즈나 amazarashi 노래들이 히트하는 이유 같다고도 느껴집니다.
기호에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그 의도가 좋다고 해도 평범하면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아닐때는 식상함도 느끼는데 이역시도 좋은 의도임을 보여주는 방식에 의해 클리셰가 아닌 오히려 더욱 더 공감되는 시적인 상상력과 감응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로부터 체험주의에서 말하는 기호 체험의 유폐와 탈유폐에 왜 노래가 치유적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애요. 어려운 단어를 안써도 공감을 주면 그 노래는 영원히 회자될 것이구요.
다 아는 얘기를 표현만 정련해서 전달한 글처럼 되어가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가사에서 드러나는 시어적인 특징을 왜 사람들이 공감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습니다.
시어는 일탈적인 단어 사용에 기반하고 규칙 위반도 합니다. 이로부터 신선함과 새로움을 느끼고 우리는 기호에 빠져듭니다. 그리하다보면 시원한 계곡에 뛰어들어 개구리 헤엄도 치면서 물장난하던 때가 생각나고… 사전에 안나온 의미를 길어올려내면 그것이 시선을 끌고 널리 회자되네요. 그러다가 널리 퍼트려지면 클리셰가 되고 다시 식상하고… 그래도 저 위에 두 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공감적 기호인 것 같애요.
대충 써서 송구스럽습니다. 길게는 썼는데 다들 아는 얘기를 ㅡㅡ;;
여튼 조만간 생계지속 작업이 잘 되면 이 주제를 심도있게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후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